제24호 2014년 봄 [특집] 특집-우리 밥 한번 먹자

[ 제주 게스트하우스의 여행자 밥상 ]

처음 뵙겠습니다. 식사하셨어요?

글 채정선

제주의 게으른소나기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식사 풍경.
처음 만난 여행자들도 한 상에서 밥을 먹고 나면 금세 친해지곤 한다.

 

제주에서 산 지 2년 되어 간다. 서울에서 살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직업이 바뀌고 소비 패턴이 달라지는 거야 말할 것 없다. 그에 앞서 크게 달라진 건 하루 세 끼를 챙기는 생활 그리고 식사 풍경이다. 내가 사는 한동리는 제주도에서도 시골인, 북동쪽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제주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내륙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나는 한동리에서 작은 카페를 열고 잼을 만들며 차와 다과를 여행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제주올레가 가깝지만 카페나 식당의 밀도가 낮은 이곳. 자연스레 이주해와 게스트하우스, 카페,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들을 만나 사귀게 되어 밥을 함께 먹는 일이 잦아졌다. 그 동안 십 년 넘게 도시에서 자취를 하며 회사 생활에 바빠 변변한 한 상을 집에서 차려 먹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곳 제주에서 출퇴근이 빡빡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면서 ‘무엇을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 하는 차이가 일상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체감한다.

 

이웃들도 여행자들도 친해지는 밥상머리

앞집 아저씨가 까만 봉지를 하나 나누어 준다. “해녀 아주머니가 잡은 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문어 한 마리가 꿈틀거린다. 동네 친구들 집집마다 문어 소식이 들려온다. 해녀 아주머니들이 문어를 잡은 김에 동네 사람들에게 잔뜩 풀었나 보다. 동네 어르신들은 나처럼 육지에서 이사온 이웃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음식을 나눠주며 살뜰히 살핀다. 나보다 조금 먼저 한동리에 자리를 잡은 이웃의 게으른소나기 게스트하우스에도 이날은 문어 풍년이다. 숙박객이 해녀에게 문어를 사다가 몇 마리 선물했다고 한다. 주인은 문어를 능숙하게 삶고, 삶아낸 물에는 라면을 끓였다. 갓 잡아 싱싱한 문어는 놀랍도록 부드럽다. 이날 게스트하우스 숙박객과 동네 친구들의 입에 들어간 문어는 든든한 식사이자 안주,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최근 제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생겨나는 게스트하우스는 혼자 혹은 여럿이 온 여행자들이 방 하나에 침대 여럿을 공유하며 머무르는 ‘도미토리’ 형식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게스트하우스들은 대개 간단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게으른소나기 게스트하우스는 따끈한 순두부와 채소 볶음, 나물 등을 내어 준다. 텃밭에서 기른 제철 채소를 주로 사용하는데, 그것을 말해주면 숙박객들은 다들 한결 더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을 먹는다. 점심과 저녁식사는 제공하지 않지만, 가끔씩 이웃들이나 숙박객들이 불쑥 가져다 주는 음식 재료로 그때그때 솜씨를 부려 나누어 먹기도 하고, 여행자들 가운데 나서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가끔 바리스타 여행자가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기도 하고, 파스타가 특기인 여행자가 이탈리안 요리를 차려내기도 한다.

 

여행자들은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여행 경험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을 즐긴다.

 

여행자 숙소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밥상을 공유하고 나면 금세 편한 분위기가 생겨나는 모양이다. 제주에 여행을 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보고 다녔는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거리가 좁혀지고 편안함이 자리 잡는다. 각자가 어디선가 마련해 온 음식에 막걸리 한 잔 곁들여 어우러지는 담소의 시간은 두세 시간도 눈 깜짝할 새로 둔갑시킨다. 신기하게도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또 새로운 먹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상 앞에서의 시간이 게스트하우스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숙소에서 처음 만나 길동무가 되어 남은 여행을 함께하기도 하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사람들이 때때로 다른 게스트를 위해 특별한 먹거리를 택배로 부쳐 주기도 한다. 따뜻한 한 상에 대한 고마움이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채우는 격이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가끔은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게 놀랍다.

 

아랫집 윗집 나눠 먹는 즐거움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의외로 전국팔도에서 나는 많은 먹거리를 경험하게 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메기가 많이 나는 계절에는 과메기 초대가 줄을 잇는다. 오히려 제주도에 와서 더 많이 먹게된 음식이 과메기다. 누구의 친정에서 보내 온 과메기, 누가 먹고 싶어서 주문한 과메기, 이웃이 나눠 주는 과메기까지. ‘나누는 기쁨이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풍성하게 나눠 주는 음식은 또 다른 이들과 함께 모여 먹는다. 때로는 김치가 넘쳐 나기도 하고, 장아찌가 넘쳐 나기도 하고,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술이 한 가득 쌓이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배포 크게 나누어 주는 사람들은 동네 할머니들이다. 당근을 수확하는 계절이라면 집집마다 당근이 넘쳐 난다. 밭에서 수확했다면서 한 바구니 가득 나누어 주는 당근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내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당근을 심고 수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보고 나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무도 마찬가지다. 특히 제주도 무는 단단하고 시원해서 깍두기를 담그면 깍두기 항아리가 바닥이 날 때까지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무 수확 계절이 오면 누구나 팔을 걷어부치고 깍두기를 담그고 싶은 생각에 사로 잡힌다. 제주도 동쪽에 당근이 풍족한 것처럼 서쪽은 콜라비나 브로콜리 등이 흔하다. 그래서 수확 철이 되면 제주도 곳곳은 매일이 성찬이다.

나와 친한 동네 친구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여성이다. 누구나 혼자 먹는 밥이 쓸쓸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한 상에 모여 밥을 먹는다. 모처럼 청국장이 먹고 싶어졌다고 끓여서 함께 먹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시래기가 많이 생겨 시래깃국을 했다고 함께 둘러앉는다. 채소나 과일이 많이 생겼으니, 밑반찬을 많이 만들었으니 나누어 먹자고 불러 모은다. 이러한 풍성한 먹거리는 부모님들이 정성으로 보내준 것도 있지만, 주로 제주의 이웃 어르신들이 베풀어 주는 것이다. 제주도 어르신들이 유독 손이 큰지 해산물이나 채소나 늘 여럿이 먹고도 남을 만큼을 듬뿍 나눠 주신다. 이것을 혼자 사는 동네 친구들끼리 조금씩 나누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모여서 밥을 먹으면, 거의 식구가 아닌가 싶게 밥정이 쌓여간다.

 

작은 카페 도모의 아침상. 여행자나 육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주손님이다.
텃밭에서 막 따온 배추로 만든 전 하나에도 즐거워한다.



나처럼 이주민인 동네 친구 하나는 여행자로 처음 제주에 왔다가 밥정에 반해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게으른소나기 게스트하우스 주인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30여 년을 살다가 제주에서 살기로 마음 먹은 뒤, 게스트하우스를 열 터를 찾아 제주도 곳곳을 다녔다고 한다. 그때 감기 기운인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가 있었다고. 무거운 마음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더니 이 힘들어 보이는 여행자를 위해 주인이 저녁 한 상을 차려 주었는데, 그 소박한 밥상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때로 눈물겹고, 배로 따뜻하다.

한때 여행자였던 나도 이제는 바닷가 작은 마을의 주민이 되어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아침상을 마련할 때가 있다. 여행자나 이주한 사람들이 주 손님이다. 특별한 것이 없지만, 정성으로 내어 주면 환한 얼굴로 돌아간다. 가끔 도시에서 온 여행자들은 밭에서 딴 배추로 전을 부쳐 주면 난생 처음 맛보는 음식인 양 즐거워한다. 그저 텃밭에서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는 배추를 뜯어 부쳤을 뿐인데. 휴식을 찾아 여행 온 이들은 이렇게 풍성한 먹을 것을 타지의 인심 또는 여유로 느낀다. 인심을 느끼고 간 이들은 어디선가 받은 만큼 또 밥정을 뿌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함께 둘러앉는 밥상.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정이 쌓여가는 밥상만큼 따뜻한 자리는 없을 거 같다. 가장 평화로운 곳, 밥상머리. 재미있게도 이 모든 것은 간단한 인사, “식사하셨어요?”에서 비롯된다.

 

↘ 채정선 님은 기자 생활을 접고 제주에 삽니다. 바다에 반해 신나게 놀다가 지금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주산 당근과 마늘, 감귤 등으로 몸과 마음에 좋은 잼을 만들며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더불어 밥벌이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