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이 읽은 책 ]

속도를 늦추라! 인류와 지구의 구원을 위한 호소 - 《불온한 생태학》

윤미화

《불온한 생태학》 이브 코셰 지음

“인간의 활동은 생태계의 건강 상태에 수많은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른바 ‘부메랑 효과’다.
생물계의 (인간과 같은) 한 개체는 다른 개체와 이들을 둘러싼 전체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으며,
이 전체 또한 혼란을 유발하는 개체에 영향을 미친다.”(80쪽)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일상 속의 생태학

생태학(ecology)은 생태계(ecosystem)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독일 생물학자 헤켈(Ernst H. Haeckel)이 처음 사용했다. 헤켈은 생물의 속(屬)·종(種)이 진화해 온 과정을 ‘계통발생’으로 분류한 학자이기도 하다. 헤켈이 생태학을 처음 사용했을 때만 해도 자연계에서의 순수한 생물만을 지칭하는 의미였다.
오늘날처럼 포괄적 의미의 생태학 개념은 1965년 생물학자 코몬디(Edward J. Kormondy)가 정리했다. 저서로는 《Concepts of Ecology》와 《Fundamentals of Human Ecology》 등이 있다. 코몬디는 학문(logos)에 인간의 집이나 거주 지역(oikos)을 포함시킴으로써 생태학(ecology)의 지평을 넓혔다. 요컨대, 생태학이란 ‘생물 집단과 그를 둘러싼 비생물적 환경을 통합한 학문’이다.
학문이라니까 거창한 것 같지만 생태학은 인간의 삶을 다룬다. 《불온한 생태학》 프롤로그에선 ‘일상 속의 생태학’을 설명한다. 주말 산책을 하는 숲은 오래전엔 원시림이었다. 바다 역시 태고의 기운이 생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와 건물이 숲을 밀어냈다. 바다는 해초밭으로 변하거나 기름덩어리로 뒤덮여 있다. 녹지면적은 줄고 바다는 검게 변했다.
인간의 생활양식은 자연환경과 밀접한 상호관계에 있다. 지구학에서 관측하는 토양과 해수면과 기후와 식생분포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자연은 질서와 순환시스템이 있다. 인간을 제외한 여타의 자연환경만 존재한다면 자연 스스로 예측된 전망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른다. 자연은 자정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이 개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인간의 의식주를 관장하는 물질은 자연으로부터 나온 것에 인위적 조작이 합해진 것이다.
의복은 석유로 만들고 성장촉진제와 항생제와 방부제가 혼합된 음식을 먹고 시멘트와 철골로 지은 집에서 산다. 에너지로 전기와 석유, 가스를 사용한다.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냉동 육류나 생선을 먹을 때 냉동 보관에 사용된 에너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 넓은 아파트를 원하므로 1인당 차지하고 있는 공간 면적과 에너지의 상호관계를 고민하지 않는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라?

지구는 한정된 공간이고 유한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한한 에너지원과 소비욕망을 기대한다. 이러다보니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연환경은 파괴되고 자원은 고갈된다. 과도한 소비욕구 때문에 쓰레기가 골목마다 넘친다. 넘치는 쓰레기는 무분별한 욕망의 배설물 같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속도가 미래의 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속도가 빠를수록 부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이 말에서 속도는 ‘정보’를 뜻한다. 정보 선점은 부를 얻는데 유리하다. 그러다보니 정보 선점이나 정보 활용을 위해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와 빠른 속도의 인터넷 회선이 필요하다. 인맥관리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단절된다. 시장으로 진출한 사교는 사업 파트너를 소개하고 물질숭배를 부추긴다.
가령, 자가용을 보자. 환경을 생각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자동차 중심 도로는 자전거 통행 안전에 취약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방금 혼탁한 공기와 교통체증을 짜증내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멋있는 디자인의 신형 자동차 팸플릿을 봤다. 이러면 자가용을 향한 욕구가 생긴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 영업사원의 판매실적과 에너지 사용량과 교통체증이 동시에 상승한다. 뿐만 아니라 자가용 유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한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동차 할부금을 다 갚기 전에 신형 자동차가 다시 찾아와 유혹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돈을 벌고 더 많이 소비하라. 더 빠른 속도로!
위에서 제시한 자동차 비유는 우리의 삶이 상품과 소비욕망에 구속된 대표사례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속도전의 진실은 물질의 공급량과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불온한 생태학》에서는 ‘더 많은 수입을 얻고자 어획량을 늘리는 어선의 종말’을 이렇게 경고한다. “모든 어업 활동은 완전히 종결되었다.” 마구잡이 포획 결과 급격한 어획고의 감소로 더 이상 잡을 어획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무모한 개입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위기에 처한 오늘날, 반대로 종의 번성이 가속화된 경우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859년 영국으로부터 12쌍의 토끼를 들여왔다. 번식력이 우수한 토끼는 1910년 6억 마리에 달했다. 초원의 무적군단 토끼는 목초를 남김없이 뜯어먹었다. 그러자 원주민이었던 왈라비가 멸종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 꼴이다. 20세기에 들어 토끼 개체군이 10억 마리에 이르자 당국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더 이상 생태 균형을 방치할 수 없었다. 90%에 달하는 토끼가 죽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토끼들은 내성을 갖고 2억 마리 이상의 야생 토끼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한계적 규모에 도달한 한 종(種)은 생물다양성에 심각한 기형을 초래한다고 책은 전한다.

 

탈성장과 반생산성만이 인류를 구원한다

생물다양성은 지구를 지탱하는 그물이다. 상호보완 관계이자 지속가능한 활동을 보장한다. 하지만 여기에 경제논리가 작동하면 상황이 변한다. 농토의 대형화는 기업이 주도했다. 화석에너지의 무기화는 국가가 주도한다. 지구환경을 황폐하게 하고 전쟁을 불사하는데도 화석에너지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래서 각국의 정상들은 지구의 안전과 평화를 논의한다. 하지만 왜 지구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환경문제를 다스리기 위한 시스템의 단편화와 관점 결여를 꼽는다.
게다가 세계무역기구나 금융기구들은 환경을 부차적인 요소로 여긴다. 자유무역 논리에 편중된 세계무역기구와 같은 큰 집단조차 환경 관련 공공재를 단순한 상품처럼 치부한다. 환경문제를 손익계산서와 같은 경제논리로 인식하는 것도 큰 장애다. 따라서 사전 예방 차원의 환경운동은 일원화된 세계환경기구의 창설을 절실히 요구한다. 세계환경기구의 창설은 상징적 효과와 함께 무역기구를 견제하는 권한을 부여할 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책 《불온한 생태학》의 주제인 ‘반(反)생산성’과 ‘탈성장’을 거론할 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유행을 이유로 신상품을 구입한다. 스마트폰을 계절마다 바꾸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에너지 비효율 극대화를 초래하면서 유기농 농산물을 수입해 먹는다. 남은 음식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멀쩡한 상태에서 폐기되는 그 많은 물건은 도대체 무엇인가?
경제성장 폭주 결과, 환경이 망가지고 생활의 풍요를 맞이했지만 지구의 반대편에선 기아가 공존한다. 이와 같이 성장제일주의는 바람이 빠진 축구공처럼 일그러져 있다. 부의 균등한 분배로 이루어진 평등한 성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는 ‘탈성장’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하는 마지막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일리치는 ‘상품에 대한 숭배사상과 일에서 의미를 없애는 도구적 이성, 기술이 삶을 파고 들어오는 상황’이 인간 활동을 장악하고 있다고 믿었다. 에너지와 식량문제를 낳고 환경파괴와 인간 존엄성을 훼손했음에도 인간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그래서 일리치의 ‘반(反)생산성’은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호소다. 문명의 이기를 버리면 당장 못 살 것 같지만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환경파괴 속도를 늦추거나 멈출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온한 생태학》은 생태학의 기본개념부터 정치, 경제적 분석과 윤리적 설득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설명한다. 환경문제를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태학의 시야를 넓히는 철학적 사유까지 제공한다. 화려한 도판과 꼼꼼한 편집이 생태학 입문서로 손색없다.

 

↘ 윤미화 님은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염소를 치며 텃밭에 채소를 심어 먹지만 제때에 심고 가꾸는 일은 여전히 서툴다고 이야기합니다. 남은 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쓴 책으로 서평집 《깐깐한 독서본능》과 서평에세이 《독과 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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