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 ]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위기를 희망으로 - 한중FTA에 대하여

김상기

전국을 휩쓸었던 세 개의 태풍도 지나고 무더웠던 날씨의 흔적도 아물어가고 있다. 아팠던 상처의 후유증을 달래줄 수확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풍성하지는 않지만 뿌린 대로 거두는 이치를 어김없이 전해주는 가을을 보냈다.

그런데 이 가을, 깊게 주름진 얼굴에 선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웃 어르신들의 얼굴이 아주 밝지는 않다. 굽은 허리를 억지로 펴고 선 늙은 농사꾼의 표정에 서글픔이 느껴진다. 그 아픔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계시지만, 그토록 믿고 지지했던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허탈할까? 12년차 농사꾼의 마음이 혼란스럽다.

12년 귀농인의 꿈을 부수는 FTA 협상

나는 평생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자 12년 전 가족과 이곳 파주에 내려왔다. 도시의 복잡한 생활이 싫어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꿈꾸며 귀농했다. 농촌은 여전한데 농업 현실이 힘들어지고 현안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현실 앞에서 침묵보다는 변화를 선택해 가게 되는 나를 보게 된다. 유기농 배농사와 감자와 당근, 콩을 키우며 물질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해도 땀 흘려 일한 만큼의 가치를 알아주는 도시 소비자들과 서로 교류하며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런 소박한 꿈이 사치라는 듯, FTA협상과 체결은 귀농인을 다시 복잡한 사회구조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등 떠밀리는 느낌이다.

한중FTA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국경 없는 농산물 거래가 우리 농업과 농촌 그리고 도시 소비자의 밥상
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분석한 자료들을 보면 지금 우리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층 걱정스럽다. 우리나라는 많은 나라와 FTA 협상을 체결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여러 나라들과 협상을 준비하고 추진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먹을거리인 식량을 내주고 휴대전화, 자동차, 철강 등 공산품을 더 많이 팔아 국익을 얻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전체 국민의 6%밖에 되지 않는 농업인들의 농업권과 생존권 그리고 식량주권을 모두 내주고, 그런 농업과 농업인의 피해를 전제로 한중FTA를 하겠다고 한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한칠레FTA 협상, 한미FTA 그리고 여러 나라와 진행한 FTA 협상도 모자라 최종결정판인 한중FTA 협상을 빠르게 마무리지으려고 하고 있다.

식량주권과 가족의 밥상을 통째로 다른 나라에 내주고도 과연 우리 국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밥상살림·생명살림·농업살림’의 길을 지향하는 농업인의 한사람으로서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 진실을 모르는 척, 바쁜 농사일에 빠져 생활하는 것이 못내 편치 못해 오지랖 넓다는 짝꿍(아내)의 면박과 잔소리를 들어가며 늦은 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농사일도 미뤄두고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는 이유는 이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손잡고 희망을 만들어 가자고, 말하고 또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밥상엔 중국산이 50%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것은 3살짜리 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농업인들과 생명농업의 가치를 아는 0.5%를 뺀 나머지 93.5%의 국민들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다. 경제발전과 성장만이 중요하다는 논리에 따라 소수인 농업인의 피해와 희생은 당연시되고 있다. 정치권력과 언론 그리고 많은 학자들과 대기업이 한데 어우러져 하늘과 땅의 주인인 농업인을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는 한칠레FTA 타결 이후, EU, 미국 등 46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발효 중에 있다. 지금도 한중FTA를 포함하여 일본, 러시아 등과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2.6%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보면 우리 밥상은 이미 다국적 밥상임을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칠레산, 김치와 쌀은 중국산, 콩과 밀은 미국산, 소고기는 호주산, 마늘과 고춧가루, 채소류는 중국산이니, 다국적 밥상이라도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17살 우리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22.6%인데 만약 우리가 먹을 쌀이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딸은 “FTA 체결해서 대기업이 번 돈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외국에서 농산물을 수입해 먹거나, 음~” 하면서 더 생각하느라 시간을 끌더니, 화가 난 듯 되물었다. “그럼 아빠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농사가 그만큼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 너도 농사지으며 살아가면 안 될까?” 하니 거침없이 “싫어요” 한다. 딸아이에게 우리 농업의 현실과 한계를 들킨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상황을 물려주면 안 되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이미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밥상의 50% 이상이 중국산 농산물로 차려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다국적 농산물을 모두 계산해 보면 밥상의 78%에 이른다는 사실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의 밥상 만큼은 다르게 차려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대응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식량자급률 높이기 위한 목표를 정하자

농촌에는 많은 생산자들이 밥상살림, 생명살림, 농업살림의 가치를 삶에서 실현하기 위해 농산물을 키우고 도시와 나누며, 어려움 속에서도 농업과 환경을 지키며 살아왔다. 환경과 생명을 중시하면서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피며 생산한 농산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도시 소비자가 있기에 어려운 현실을 헤치며 희망을 만들어 왔다. 한중FTA 협상이라는 현실 앞에 변하게 될 농업 현실을 살피고 우리 농업과 농촌 그리고 도시 소비자의 밥상에 다가올 변화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생산자가 앞장서고 소비자가 함께 지지하며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함께 대안을 만들어야 할 시기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한중FTA에 대해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점검하며 현실적인 대안과 목표를 구체화하며 실행해나가는 것이, 대국민적 공감대를 일으키기 어려운 영역인 농업살림의 꿈에 희망을 품는 출발이 아닐까? 도시와 농촌이 이렇게 하기로 약속하면 어떨까?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 함께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을 전개하여 조금씩 우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토종종자로 생산한 농산물과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생산한 농산물들,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생산자들의 농산물을 우선 공급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젊은 귀농인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우리 농촌이 젊고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시와 농촌이 희망의 씨앗을 뿌려나가는 것이다.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웃 농업인들과 주변 소비자에게 우리의 생활과 활동이 곧 새로운 변화의 출발이라는 것을 함께 공유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우리들만의 가치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가치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
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협동의 가치와 가능성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정치인을 바르게 선택하는 것 또한 중요할 것이다. 생명살림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후보와 국민적 합의 없이 진행되는 한중FTA 추진을 반대하는 정치인에게 적극적으로 투표하자. 작지만 소중한 우리들의 뜻을 모아, 공동행동으로 위기를 희망으로 바꿔가자고 제안드린다.

↘ 김상기 님은 파주 비무장지대에서 유기농 배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지보은공동체 대표입니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산하 경기도 학교급식 출하회, 16개 출하회 연합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살림 한중FTA 대책위원회 기획팀에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