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살림,살림

[ 이 사람의 살림살이 ]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은 어른 모두의 책임” - ‘제주 아기 할머니’ 김순선 조산사

우미숙

“생명은 만들어지면 어떻게든 세상에 나오게 해야 해요. 그 운명을 어찌 알겠어요. 어떤 귀한 인생을 살아갈지 모를 일이에요.”

제주에서 만난 김순선 조산사는 생명에 대한 원칙이 하나 있다. 생명이 생기면 낳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찌 하느냐에 따라 그 생명의 앞날은 바뀌게 마련이라 생각한다. 생명에 대한 엄한 원칙이 있어서인지 그의 말에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30년간 7천 명의 아기를 받은 사람으로서 그런 자신감은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그런 당당함 때문일까. 그에게 아기를 맡기고 싶어 전국 각지에서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오는 젊은 부부들이 늘었다.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는 조산사 생활

조산사 김순선. 그는 조산사라는 직업이 대단히 자랑스럽다. 환갑을 바라보는 그는 빠르고 강약이 뚜렷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지만 성의를 다해 답을 하는 모습에 귀찮고 지친 흔적이 없다. 다만 눈꺼풀이 조금 무거운 듯해 항시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을 정하지 않고 태어나는 아기들은 조산사에게 잠을 허용하지 않는다. 잠을 자다가 새벽 2~3시에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가는 일이 거의 매일이다. 부족한 잠은 잠깐 틈이 날 때 눈을 붙이는 것으로 보충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이 일이 싫은 적도 없어요. 아무리 새벽에 산모가 온다고 해도 잠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간호대학 1년 때, 재택근무도 가능한 자유로운 직업이라 생각해 조산사 과정을 선택한 게 평생 직업이 되었고, 1983년 2월 16일, 자신의 이름을 붙인 조산원을 처음 열었다. 처음 조산원 문을 열고 아기를 처음 받았을 때의 그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평생 그 일을 잘할 것 같다”며 어깨를 두드려 준 주인집 할머니의 말과 손길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산원은 입원실 2개인 일반주택이었다. 19평은 살림집으로, 11평은 조산원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매일 아기 우는 소리를 들었다. 1990년에는 13개의 입원실이 있는 조산원으로 커졌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산후조리원도 열었다. 당시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때였다. 한 지인이 출산 후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시작했다.


15명의 아기가 있는 신생아실. 이곳의 모든 시설은 나무로 되어 있다.

김순선 씨의 꿈은 더 큰 곳에 있었다. 제주 시내, 도심에 있어도 시골 같은 풍경에서 산모들이 편안하게 쉬도록 만들고 싶었고, 더불어 이곳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돌봐주는 영아어린이집을 꾸리고 싶었다. 꿈은 꾸는 만큼 이루어진다고 했다. 2009년에 지금 조산원 자리인 1천 평 규모의 땅에 건물을 짓고, 김순선자연조산원과 산후조리원, 곤지곤지어린이집을 꾸렸다. 비록 재산을 전부 쏟아 넣어도 부족할 정도였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몹시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다. 땅에 건물에 시설까지,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돌보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산모들과 아기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쉴 수 있게 편백나무와 황토로 내부를 꾸몄다.

은은한 불빛에 아늑한 분위기의 분만실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흰 타일에 차가운 침대와 눈이 부시는 형광불빛이 있는 일반 병원과 확연히 다르다.

곤지곤지어린이집은 조산원의 입원실 일부를 비워 마련했다. 생후 1개월부터 24개월까지 이곳 조산원에서 태어난 영아를 주로 맡아 보육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직장 시간에 맞춰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이곳에 머문다.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어 젊은 엄마들에게 이만한 곳이 없다. 비록 이익은 남지 않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모유 안 먹이는 부모 쫓아낼 정도로 엄격

김순선 조산사의 유명세는 아주 까다롭고 엄격할 정도의 모유 수유 교육 덕이다. 어떤 아기 엄마는 대놓고 “젖을 안 먹이겠다”고 했다. 아기 아빠까지 나서서 산모가 잠을 자야 한다며, 한 달 있으면 직장에 나가니 지금 먹여 봤자 소용이 없다며 분유를 먹이겠다고 했다. 한 시간 동안 앞에 앉혀놓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자, 그 자리에서 내쫓았다. 모유를 먹이면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 치도 물러섬이 없이 더 강하게 모유 수유를 주장하게 되었다. 모유 수유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아기가 태어나서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니 아무거나 먹이지 말고 모유가 나올 때까지 애를 써야 해요”라고 강하게 밀어붙인다. 단 겁을 먹는 산모들을 위해서는 동냥젖이나 물을 주기도 한다.

예비 엄마뿐 아니라 예비 아빠와 가족들 모두를 앉혀 놓고 교육한다. 가족이 함께 아기를 길러야 하는 만큼 자연분만과 자연양육이 더불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후조리원 2주 생활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유 수유를 훈련하고, 아기를 잘 기르는 방법들을 배워 집에서도 이어가야 한다. 아이를 낳을 때는 아빠뿐 아니라 아기의 형제자매도 함께한다. 출산과정을 직접 보면서 생명 탄생의 신비와 엄마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출산에 함께 참여한 아이들은 절대로 동생을 괴롭히지 않는다. 이만한 성교육은 없다고 생각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산전관리, 산후조리, 신생아 관리, 자연분만법을 나눠서 교육한다. 그 결과 조산원은 2006년에 유니세프에서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 재인증을 받았다.


작은 텃밭 작물을 식재료로 사용

김순선 조산사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것이 부모들만 아니라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 자신도 일상생활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의 전화는 24시간 핫라인 상담이 가능하다. 젖이 안 나오는데 어떡하냐는 걱정부터 아기가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다며 건강 진단까지 부탁한다. 소아과 의사는 아니지만 오랜 경험으로 말로만 들어도 아기가 어디가 좋지 않은지 알아차린다. 분만에서 교육, 상담까지 모두 직접 챙기다 보니 하루 일과가 녹록치 않다. 새벽 분만까지 생각하면 24시간 엄마와 아기들에게 바치는 셈이다.

새벽에 긴급호출 때문에 부스럭거리며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이 많아 가족들이 불편할 법도 하다. 하지만 가족들은 오랜 시간 겪어온 덕에 으레 그러려니 한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집안일을 남에게 맡긴 적이 없다. 집안일을 충분히 잘 해내지는 못하지만 남편의 지지와 아들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 그보다 든든한 것은 없다.

조산원 뒤뜰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오이·상추·가지·호박·고구마를 직접 심고 가꾼다. 조산원 식재료로 쓰기도 하고 땅에서 생명을 키우면서 기운을 얻기도 한다. 된장과 간장을 직접 만들어 산모들 식사에 쓴다. 혼자 하는 일이라 밭이 조금 거칠다. 잡초도 많고 호미질을 몇 번 해야 하는 곳도 보인다. 열매가 맺히다 만 것도 있고, 아직 따지 못한 오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에겐 100평의 텃밭이 또 하나의 일상이다. 조산원을 지으면서 꿈꾸던 것이기도 하다.

어떨 땐 잔소리 심한 시어머니, 어떨 때는 따뜻한 친정어머니, 어떨 땐 엄격한 기숙사 사감 선생님, 또 어떨 땐 젊은 예비 부모들의 멘토다. 지금도 꾸준히 마라톤과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고, 현미밥으로 건강을 챙긴다. 어디를 가나 현미밥 도시락을 준비해 식사할 때 내놓는다. 자신이 먹을 분량보다 더 담아와 나눠 먹는다.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일을 이렇게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해낼 수 있는 건 바로 현미밥과 자신만만한 직업의식 덕이 아닐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엄마와 아이가 바로 서는 것. 그것을 위해 자신이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우미숙 님은 한살림에서 조합원 소식지 <좁쌀 세 알>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을 해왔습니다. 현재 한살림성남용인 이사장이며 《살림이야기》 편집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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