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특집] 지구를 생각하는 겨울나기

[ ⑫ 에너지 복지를 향한 제언 ]

소득중심 복지지원보다 경제·환경 불평등 해소를

최승철

사회경제적·환경적 약자에게 겨울 추위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이다. 냉난방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에너지 불평등 문제는 저소득층에게 일시적으로 연료나 난방비를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주거형태와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종합적인 에너지 복지 대책이 필요하다.

 

약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

일반적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상황을 ‘춥고 배고픈’ 기억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빈곤상태는 단순히 물질적 조건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차원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국제인권기구는 빈곤이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와 선택이 부정되는 상태’(<Human Develpoment Report 1997>)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미 상당 정도 인류의 안정적 생존권, 즉 음식, 물, 피난처 등과 같은 건강 및 삶에 대한 권리를 잠식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는 인간의 일상 활동은 물론 사회경제적 개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필수요소이다.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의 집중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류는 석유나 석탄 등 유한한 자원인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불평등 심화라고 하는 부메랑에 직면했다. 에너지 자원의 고갈로 인한 유가 상승과 기후변화는 사회경제적 약자는 물론 노인과 어린이 등 환경적 약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정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전쟁과 착취로 이어졌으며, 에너지를 보유한 지역은 탐욕스러운 채굴로 인해 황폐화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처럼 생산된 에너지원은 도시와 산업시설이 독점하여 경제성장과 시장의 풍요로움을 이루었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에너지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과 주민에는 에너지 불평등과 부정의가 심화되었다. 화석연료의 공급한계, 안정적 주거환경의 필요성,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면서 에너지 빈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극복해야 하는 현실적이고 시급한 과제로 부각하였다. 에너지 빈곤층은 통상적으로 ‘빈곤선, 에너지 비용, 적정온도 기준’을 종합하여 정의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 빈곤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며 관련 조사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에너지 빈곤은 소득수준-주거환경-에너지 가격의 중층 결합 문제

에너지 빈곤층이란 대략적으로 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구입비용으로 지불하는 집단을 말한다. 정부에서는 2016년까지 에너지 빈곤가구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에너지 빈곤의 문제는 현재 어떤 유형의 에너지원을 사용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제약조건 때문에 적절한 양의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여 삶의 질과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다. 즉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문제는 사회경제적 조건(저소득 계층)뿐만 아니라 주택의 물리적 조건이 결합하여 나타난다. 특히 에너지 빈곤은 소득수준, 주거환경, 에너지 가격 등의 문제가 중층적으로 결합하여 삶의 질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결과로 구체화된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그리고 경제위기의 심화는 에너지 위기와 불평등을 확대하고 구조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위기상황은 ‘에너지 빈곤’이라고 하는 새로운 빈곤유형을 낳게되는 계기가 된다. 정부의 예측과 달리 경제위기와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에너지 빈곤층의 규모는 2010년 말 현재 160만 가구에 이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를 제외한 단독주택이나 농가주택은 에너지 효율성이 낮은 편이다. 특히 노후주택의 비중이 큰 지역과 도시가스 등과 같은 값싼 에너지를 사용하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일수록 에너지 비용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449만 동의 주거용 건물과 113만 동의 업무용 건축물, 17만 동의 교육사회용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60%는 에너지 효율성이 취약한 노후건축물로 분류되고 있다.
최소 생활을 위해 적절한 에너지가 공급되고 이용이 보장되는 안전한 주거환경은 인간의 기본권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에너지 복지법’ 제정과 관련하여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으며, 특히 에너지 빈곤에 대한 개념과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소득수준에 따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주거공간의 물리적 조건과 사는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파악은 일반적인 소득기준을 기준으로 한 저소득층과 다른 접근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노후한 집에 사는 농산촌 노인층은 소외되는 복지정책

2006년 시민단체 환경정의에서 도입한 ‘WAP(The Weatherization Assistance Program; 에너지 빈곤극복을 위한 주택에너지 효율개선사업) 활동’은 에너지 빈곤에 대한 실천적 대안으로 부각되었다. 2007년 이후 에너지 빈곤 극복을 위한 구체적 실천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주택에너지 효율개선사업’과 한국에너지재단이 중심이 되는 ‘에너지 복지 지원사업’으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특히 한국에너지재단의 에너지 복지 지원사업은 보조금 지급, 난방기기 공급과 단열 개선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한국에너지재단이 17만4천여 가구를 대상으로 추진해온 에너지 복지 지원사업은 앞서 지적한 에너지 빈곤의 구조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사람 중심의 전통적인 복지 지원정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원 범위를 소득수준에 따른 취약계층 기준으로 설정하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이다. 특히 에너지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산촌 지역에서 노후한 자가주택에 살고 있는 노인의 경우, 집이 있기 때문에 소득과 재산 조건에 걸려서 에너지 복지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또한 이사가 잦은 대도시 지역 저소득계층에 집중된 에너지 복지지원은 사업성과와 모니터링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이면서 노후주택의 물리적 시설 개선과 에너지 복지라고 하는 개선효과를 명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채 사람 중심의 반복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빈곤의 문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적응과정에서 침해당하고 위협받는 생존권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런데도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접근은 소득과 재산수준에 기반한 현물지원이 주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에너지 복지 정책은 급속도로 노령화되고 있는 농촌지역의 에너지 불평등의 문제를 방치한 채,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시혜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복지 정책이 왜곡되고 지역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에너지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려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취하는 동시에 에너지 이용의 형평성을 높이고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역에너지원을 활용한 에너지 전환을 고민해야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에너지), 복지, 환경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볼 때, 환경정의를 비롯한 시민사회진영에서 추진해온 ‘에너지 빈곤극복을 위한 주택에너지 효율개선사업’은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에너지 비용을 절감한 직접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게 검증되었다. 하지만 공공기관을 통해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 복지정책은 지나치게 소득수준에 초점을 두어 에너지 복지정책의 환경적 의미를 담지 못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환경정책의 복지화’와 ‘복지정책의 환경적 함의’를 고려하여 지속가능한 사회개발과 기후변화 대응이라고 하는 거시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주택소유자나 거주자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하여 비용 부담을 덜어줄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특히 에너지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이 에너지 복지의 틀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실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노령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농산촌 지역에서 에너지 복지정책의 문제는 현물급여나 주택개선과 같은 문제로 해결할 수 없는 공간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 지역에서는 도시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현물급여와 주택개선을 기반으로 하면서 바이오매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하는 지역에너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에너지 전환을 고민해야만 한다. 동시에 국민주택기금 등 정부의 각종기금을 활용하거나 이에 준하는 정부융자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거환경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런 지원정책은 긍극적으로 노후하고 낙후된 주거공간에 대해 자원절약형의 쾌적한 생활공간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동시에 지역사회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경제적 지속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환경정의의 WAP란?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미국 에너지국(DOE)에서 시작한 WAP는 저소득 계층의 주택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켜 비용을 절감하고 건강과 안전을 보호할 목적으로 시행해온 프로그램이다. 시민단체 환경정의에서 2006년 우리나라에 도입하여 ‘따뜻한 집수리 사업’ 등의 이름으로 진행하였다.
 

- 노후주택 개보수를 통하여 주거환경 개선
- 에너지 효율을 높여 난방비 절감
- 연탄·난방유 등의 난방 에너지 사용을 감소시켜 이산화탄소 및 대기오염 물질 배출 감소
- 에너지 진단 및 교육 부문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
- 지역의 집수리 센터나 자활 센터와 연대하여 일자리 보전

 

 

↘ 최승철 님은 환경정의연구소 부소장으로 에너지 빈곤을 극복하고 모두가 건강한 초록마을을 만들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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