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살림,살림

[ 이야기가 있는 맛 ]

백담산장에서 전해온 가족의 맛 ‘낭화’

글. 김홍성 사진. 손용호

옛날 선방 스님들이 삭발하고 목욕하던 날에 즐기던 음식이 1970년대 내설악 백담산장으로 이어졌다가 오늘에 와서는 식구들의 오붓한 시간에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옛날에는 ‘낭화(浪花)’라고 일렀던 그 음식을 요즘 사람들은 칼국수라고 부른다.

물결 낭(浪)에 꽃 화(花). 검색을 해 보고서야 낭화가 국어사전에 버젓하게 올라있는 명사라는 걸 알았다. 국어사전에는 ‘밀국수의 하나. 보통 국수보다 굵고 넓게 만들어 장국에 넣고 끓인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사진기자 윤평구 씨와 전통주 연구가 고성은 씨가 두 딸을 데리고 캠핑을 다니며 만드는 낭화는 미리 낸 국물에 따로 만든 국수사리를 토렴하여 낸다.


아이들과 놀면서 만들어야 제맛

경기도 포천에 있는 어느 숲속 캠핑장에서 부부는 두 시간에 걸쳐서 낭화를 만들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숲속에 차린 부엌은 조촐했다. 가스스토브 위에 올린 솥에서 다시마·표고버섯·무로 만드는 맛국물이 끓고, 접이식 식탁 위에서는 밀가루가 반죽되어 국수가 되었다. 모든 일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달려와서 어른들이 밀가루를 반죽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반죽을 숙성시키는 동안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조금 남긴 밀가루를 줘서 스스로 반죽을 해 보게 했다.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 반죽하고, 밀대로 밀어서 펴고, 감자전분을 솔솔 뿌려가며 돌돌 말아서 칼로 써는 모든 행위는 아이들도 해 보고 싶은 신기한 놀이였다. 낭화는 그렇게 아이들과 놀면서 만들어 먹어야 제 맛이라고 고성은 씨는 말했다.

이 가족이 캠핑장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은 그때그때 다르다. 여러 가족이 함께할 때는 다른 가족들과 어울려 간편한 음식을 만든다. 모닥불에 돼지고기를 굽기도 하고, 소시지나 머시멜로우를 꼬치에 꿰어 굽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끼리 단출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낼 때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리는 음식을 만든다. 낭화는 물론 빵이나 과자를 오븐에 구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 오붓한 시간은 오붓하게 즐길 줄 알고, 여러 가족이 어울릴 때는 유쾌하게 어울려 논다. 고성은 씨에 따르면 부모와 캠핑을 오래 다닌 아이들일수록 환경 적응이 빠르고 유난을 떨지 않는다. 수세식 좌변기가 없는 캠핑장에 데려 가도 “싫어요” 또는 “무서워요” 소리를 안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어울리는 방법과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이 가족이 캠핑을 시작한 지는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큰딸 윤하연 어린이(11세)는 겨우 백일 때 강보에 싸여 부모의 점봉산 산행에 동참했다. 작은딸 윤수영 어린이(9세)를 낳고서는 본격적인 오토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캠핑이나 자연으로의 여행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자 가업이라고 윤평구 씨는 말한다. 작고하신 아버지 윤두선 선생은 해방 전에 승려 신분으로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녔으며, 1970년대에는 내설악에서 백담산장을 운영하며 10여 년을 지냈다.

산장 식객들도 같이 만드는 특식
윤평구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방학이면 백담산장에 가서 아버지와 살았다. 1970년대 초의 백담산장에는 식객이 많았다. 당시 대학은 휴교가 잦아서 산악부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수배를 피해 숨어든 운동권 학생 등 사연 있는 사람들이 상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긴 식탁 두 개를 붙이고 둘러앉기도 좁았을 만큼 식객들이 많다 보니 산장 사용료 500원으로는 쌀을 사대기도 벅찼다. 그런 시절의 백담산장 특식이 낭화 즉, 칼국수였다. 백담산장의 낭화는 국물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고 약한 불에 오래 끓여 만든 육수에 찬물에서 건진 사리를 1인분씩 토렴해서 고명을 얹어 내었다. 고명은 국물을 내는 데 쓴 버섯·무·다시마 등을 채썰기나 나박썰기로 썰어서 조선간장과 들기름으로 양념해 두었다가 간이 배면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서 썼으며 두툼하게 자른 두부를 전 부치듯 들기름으로 프라이팬에 지져서 국수 사발에 곁들였다.



백담산장의 낭화는 산장에 기거하는 여러 식객들이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백담산장 낭화가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윤두선 선생의 지도가 필요했다. 선생은 해방 전에 전국의 여러 사참(寺站)과 선방(禪房)을 드나들며 익힌 낭화의 맛을 백담산장에서 추억하며 재현했던 것이다. 사참이란 스님들이 어떤 절에서 다른 절로 가는 중간에 잠시 쉬어 가는 절을 말한다. 윤두선 선생은 승려 시절에 자주 갔던 금강산 가는 길과 그 길의 사참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다가는 어느 사참 보살이 팔을 걷어붙이고 고추장 독에서 꺼내어 상에 올려준 더덕장아찌의 맛을 자주 그리워했다고 한다. 낭화의 맛이란 결국 옛날 스님들의 입맛에 맞추어 이어져 내려온 맛이다. 선방에서 안거하는 석 달 동안 보름에 한 번씩 목욕하고 삭발하는 날이 돌아오는데 그날은 특식으로 낭화가 나오고 두툼한 두부부침이 따로 곁들여졌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윤평구 씨.

“두부 한 모를 반으로 잘라서 두툼하게 부친 것을 두 개 잡숫고 나면 이마에 기름이 돋더라고 하셨죠. 섭생이 부실한 겨울에 목욕을 하고 나면 몸이 휘어지잖아요. 그럴 때 낭화와 두부로 영양 보충을 하셨던 거죠. 잡숫고 나면 거뜬하고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두부나 들깻가루가 상품으로 나오지만 백담산장 시절만 해도 맷돌에다 일일이 타고 짜야 했으므로 아침부터 시작해야 점심에 먹을 수 있었다고 윤평구 씨는 회상한다.

윤두선 선생은 여자들이 산과 자연을 배워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담산장을 운영하면서도 내방객이 뜸한 계절에는 주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졸업 여행 가이드를 했다. 우리나라의 진짜 모습을 봐야 한다고 송광사나 화엄사 같은 절에서 자고, 해남 대흥사 아래 천일식당에서 토속 음식을 먹는 식의 졸업 여행이었다. 윤평구 씨는 대학 입학 예비고사를 치른 직후,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인 1970년대 초에 아버지를 따라 그런 여행을 경험하면서 아버지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먹는 낭화
"우리나라 음식이 소박하다고 하는데 사실은 호화스럽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밭에서 금방 온 싱싱한 채소에 30년 숙성된 장을 찍어 먹는 나라, 게다가 시절까지 조화를 맞추는 나라가 어느 나라냐고 하셨죠. 아버지는 말씀을 잘 하셨어요. 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면 ‘아아’ 하는 감동으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나 혼자 갔던 산을 아버지와 다시 가 보면 전혀 다른 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음식이나 전통문화는 물론 산과 자연을 보는 눈을 뜨게 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윤평구 씨는 그렇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말고는 딸들에게 딱히 물려줄 것이 없어서 가족 캠핑을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버지와 함께 내설악 백담산장에서 낭화를 먹던 시절이 그리워서 산을 찾고 숲을 찾아 캠핑을 하며 낭화를 만들어 먹는지도 모른다.

윤두선 선생이 지리산 천은사에서 임종을 맞을 때(1992년) 아들 윤평구 씨는 지방으로 출장을 떠났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천은사로 달려간 윤평구 씨는 영면에 드신 아버지의 가슴에 염주가 놓인 것을 보았다. 그 염주는 윤평구 씨가 네팔 룸비니에 출장 갔던 1987년에 사다 드린 염주였다. 살아생전에 염주나 목탁 또는 탱화 등 불교 상징물을 지니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아들이 내미는 염주를 두 손으로 받아 들고 “너 이놈 지옥에 가지는 않겠구나” 하며 빙그레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낭화를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가장 강렬한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다.

햇살이 비껴드는 숲속 캠핑장의 접이식 식탁 위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낭화 사발이 올라오자 고소한 들깨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그때 누군가가 단풍이 곱게 물든 나뭇잎 몇 장을 식탁 가장자리에 올렸다. 낭화를 차린 식탁에 아주 잘 어울렸다.
 

  낭화 만드는 법



재료(4인 기준):

밀가루(강력분) 3컵, 막걸리 3큰술, 물은 된 반죽이 되도록 적당량, 감자전분(밀대용) 1컵, 다시마 10cm×10cm 2장, 표고버섯 8개, 무는 두께 5cm 한 토막, 거피 들깨 간 것 1컵. 국간장, 들기름, 부침용 두부 1모

➊ 국물 내기 : 무, 다시마, 표고버섯 또는 느타리버섯을 물에 넣고 끓여 한 시간 정도 푹 우린 다음 들깨가루를 넣고 다시 뭉근하게 끓여야 제 맛이 난다. ➋ 반죽 : 밀가루에 막걸리로 반죽한다. 막걸리와 밀가루, 그리고 물의 양을 조절하면서 기호대로 반죽하여 한두 시간쯤 숙성시킨다. ➌ 반죽 밀기 : 숙성된 반죽을 밀대로 밀어 펼친다. ➍ 반죽 썰어 면발 만들기 : 밀어 펼친 반죽이 붙지 않게 감자전분을 솔솔 뿌리며 돌돌 말아서 칼로 썬 후 붙지 않게 펼쳐 놓는다. ➎ 고명 만들기 : 국물을 낸 무, 다시마, 표고를 쓴다. 무는 나박썰기, 다시마와 표고는 채썰기를 한 다음 조선간장과 들기름으로 양념해서 간이 배면 프라이팬에 볶는다. ➏ 국수 삶기 : ④의 면발을 끓는 물에 삶아서 찬물에 재빨리 헹구어 1인분씩 사려 놓는다. ➐ 두부는 두툼하게 썰어서 들기름에 전 부치듯 지진다. ➑ ⑥에서 사려 놓은 국수를 1인분씩 토렴하여 국물을 붓고 고명을 얹은 다음 ⑦의 두부를 얹는다.


김홍성 님은 산책과 도보 여행을 좋아합니다. 20세기 말에 네팔로 이주하여 설산을 벗하고 살다가 근년에 귀국해 춘천에 머물고 있습니다. 시집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산문집 《히말라야 40일간의 낮과 밤》,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우리들의 소풍》, 《꽃향기 두엄 냄새 서로 섞인들》 등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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