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2012년 겨울 [특집] 지구를 생각하는 겨울나기

[ 온실가스 감축·탈핵 정책이 있는가? ]

우리가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

이진우

 

 

얼마 전 우연히 한 논술지도 사이트에서 원자력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원자력공모전에 글짓기 작품을 출품하고자 하는 한 학부모와 논술지도 선생님의 문답을 보게 됐다. 수상하기 위해서는 핵발전의 긍정적인 요소를 설명해 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핵발전의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필요하고, 작년 수상작은 ‘지구용사 원자력아’라는 표현을 썼다는 친절한 예시까지 곁들였다. 심경이 복잡해졌다. 후쿠시마 참사가 일어난 지 1년밖에 안 된데다가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마약을 투여하고, 불량 부품을 사용했다는 등 끔찍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시기에 핵발전과 함께하는 감동적인 에피소드라니. 수상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좋다는 어머니와 논술지도사에게서 배운 아이는 대체 어떤 눈으로 핵발전을 보게 될 것인가. 여전히 핵발전 퇴출은 장기적 싸움이 될 요량인가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첫단추를 어떻게 꿸 것인가이다. 탈핵 얘기가 쏠쏠히 등장하고 있는 이번 대선은 그 시발점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탈핵 시점 제시가 핵심

탈핵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탈핵 시점을 정하는 것이다. 혹자는 현실을 무시하고 목표를 먼저 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목표가 있어야 거기에 맞춰 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한 구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단순히 그냥 탈핵하겠다는 정치적 슬로건만 내놓는다면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한층 무덤덤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쉽게도 탈핵 시점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보는 아직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11월 말인 현재 아직 에너지·기후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는데, 박근혜 후보가 집권 여당의 후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전면 부인하는 정책이 나오긴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지난 4월 총선에서 핵공학자를 비례대표 1번에 배치한 것 자체가 탈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쏟아붓는 경제발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량이 충분해야 하기 때문에 핵발전이 필요하다는 구태의연한 인식이다.

반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명확히 탈핵 의지를 선언했다. 아직 착공하지 않았지만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신고리5~8호기와 신울진3~4호기 건설 중단과 고리1호기 재가동 중단과 월성1호기 수명 연장 중단이 핵심이다. 핵발전소 건설 중단에 따른 전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전력 공급의 20%로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화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전반적인 방향은 그간 탈핵을 요구하는 학자들이나 시민단체들의 주장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탈핵을 언제까지 완료하겠다는 언급이 없다. “더 노력한다면 (탈핵) 시기는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제 핵발전을 끝내자는 신호를 주기 위해 탈핵 시점은 정치적인 슬로건을 넘어선 약속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은 보다 분명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문재인 후보의 공약 역시 여전히 위험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 계획 역시 중요

탈핵 시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항간에서는 핵발전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과 핵발전 폐쇄는 동시에 추진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핵발전은 발전 단계에서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을 뿐이지 전 과정을 평가하면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실성이라는 미명으로 ‘핵발전 대 온실가스’라는 구도를 인정한다면 핵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말려들게 된다. 게다가 기후변화의 위협은 핵발전의 위협을 능가한다. 핵발전의 단기적 위협에는 못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가 더 큰 위험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탈핵과 더불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의제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산업계에 책임 부가하는 정책 필요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 모두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60% 이상은 산업 분야에서 배출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산업 분야 정책과도 밀접히 연동되어 있지만 어디에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추진 일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기후변화에 의해 가시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나날이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도 정치지도자들의 빈곤한 인식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기만 하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구체적인 감축 목표와 함께 사회적 전환을 추동할 수 있는 실행 정책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기 전에 정책을 수립·집행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대응 인프라를 만드는 차원에서 필수적으로 구체적인 목표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현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것만으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정책 이행 여부에 대한 지속적 감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지난 11월 초, 3주년 창립 심포지엄을 통해 탈핵과 온실가스 대응을 중심으로 한 5개 핵심과제와 18개 구체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여기저기서 차기 정부에게 환경·에너지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5년마다 관성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번번이 거기에서 머물렀다. 정책을 요구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차기정부의 에너지·탈핵·기후정책의 과제가 빈곤한 수준에서 머문다면 그 책임은 시민사회에게도 있다. 잘못하면 탈핵을 최우선 선택 요소로 고려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뽑은 후 다시 탈핵을 요구하는 악순환의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될 수도 있다. 탈핵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적 과제는 명확하다. 중요한 건 그들도 동참하게 만들 것이냐, 다시 적으로 돌릴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들은 탈핵과 에너지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을 해야 한다. 우리가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제안한 탈핵과 온실가스 대응을 위한 5대 핵심 과제, 18개 구체 과제 전문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enerpol.net) 자료실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이진우 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탈핵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연구와 제언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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