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살림,살림

[ 살림의 책 ]

광야에 여우가 달리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리_매제민(梅濟民)의 <북대황>

글 정지아

 

내 고향 반내골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82년, 그러니까 내가 고 3때다. 산 사이 계곡을 따라 뚫린 신작로가 외부와의 유일한 연결통로였다. 길이 포장되고 그 길을 따라 보일러며 가스통, 냉장고 따위를 실은 트럭들이 쌩쌩 달려오기 전까지, 반내골은 자급자족의 세계였다. 비록 산다랑이 논이긴 하지만 사십 여 가구 굶주리지 않을 만한 쌀은 있었고, 사방이 산이니 나물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품을 팔아 산을 타기만 하면 겨우내 먹을 취나물이며 고사리며, 더덕이며 칡이며, 운 좋은 가을날에는 송이버섯도 구할 수 있었다. 송이버섯 썰어 넣은 고깃국을 서너 차례 먹고 나면 가을이 갔다. 고깃국도 섭섭지 않게 먹었다. 소고기를 먹는 날이야 일 년에 서너 번이었지만, 닭장만 하나 지어 놓으면 닭들이 천지 사방 쏘다니며 벌레를 잡아먹고 쑥쑥 자랐다. 떡국이든 미역국이든 닭고기면 충분했다. 잔칫날에는 동네에서 돼지도 잡았다. 개울에는 고둥도 있고 은어도 있고 민물게도 있고, 가재며 빠가사리며 붕어며, 비린 것도 넉넉했다. 신작로를 따라 읍내로, 서울로 나오기 전까지 반내골은 부족한 것 없는 자급자족의 세계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서울로 떠나고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놓이고 길이 뚫려 세상과 통하게 되면서부터 부족한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먹을 게 넘쳐나는데도 텔레비전 속 세상과 비교하면 뭔가가 늘 부족했다. 풍족해진 만큼 필요한 게 더 늘어나는 그 묘한 이치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선배에게 반내골에서 보낸 설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부산으로 서울로 돈 벌러 떠났던 언니 오빠들이 선물을 한아름 사들고 돌아오고, 며칠 전부터 유과며 조총을 고느라 아랫목이 설설 끓고, 목 비틀리는 닭들의 비명소리와 떡 방아 찧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두부를 쑤느라 고소한 콩 냄새가 마을을 휘감던 설날의 풍경. 아무리 그리워도 이제 다시는 그 풍경 속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반내골은 아직도 백운산 자락에 그대로 있지만, 이제 반내골 사람들은 설날에도 떡방아를 찧는 대신 뻥 뚫린 포장도로를 쌩 하니 달려 방앗간에서 떡을 맞춘다. 두부를 쑤지도 않고, 유과를 만들지도 않고 조총을 고지도 않는다. 읍내에 즐비한 상점에서 사면 그만이다.


술 한 잔 마신 김에 유년의 고향이 그립다고 선배에게 술 투정을 하고난 며칠 후 책 한 권이 도착했다.《북대황(北大荒)》. 북만주 벌판에 꽃 핀 사랑과 추억의 대서사시라는 부제에 끌려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고, 나는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게 벌써 십 수 년 전, 나는 지금도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북대황》의 아무 페이지나 펼친다. 거기 내 유년의 고향이 있다.


북대황은 중국 대륙의 동북 지방을 이루는 하얼빈 이북 땅을 가리키는 옛 이름이다. 광활한 땅이 미개척지로 남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그리고 스웨덴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는《북대황》은 한 마디로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읽지 않고는 그 맛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탓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저자 매제민이 자연을 정복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서 고향 북대황에서 보낸 유년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석양 노을이 져서 초원이 연보랏빛으로 곱게 물들고, 지평선 저 멀리 산들도 점차 시야에서 사라지면 말들은 발길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 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엔 양들이 몰려오고, 들꽃을 꽂은 맥고모자를 쓰고 사냥총을 찬 여동생이 말을 몰아 양떼의 뒤를 따라온다. 익살맞은 개들은 어머니를 에워싸고 집으로 돌아온다. 황혼은 초원에 무한한 평화와 희열을 안겨준다.”


북대황 사람들은 가축을 키우며 살아간다. 외지에 나와 공부하던 북대황의 청년들이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면 어린 시절 타던 말이 앞발굽을 세우고 땅을 파헤치면서 반긴다. 섣달 그믐날이면 북대황 사람들은 가축무리를 찾아다니면서 술제사를 지낸다.


“어머니는 술잔을 들고, 동생과 여동생은 초롱불을 들고 앞장서면, 나는 향을 피운다. 가축의 무리 앞에서 서서, 할아버지는 잔마다 공손히 술을 부어 뿌리면서 가축들의 은혜를 축수한다. 목장의 주인은 사실 가축들이다.”


언젠가 저자의 목장에 사슴이 몰려와 채소밭의 배추를 뜯어먹었다. 여름이 짧은 대초원에서는 늘 채소가 부족하여 어머니가 애지중지 가꾸던 채소밭이 쑥대밭이 되었다. 어머니는 개들이 혹 사슴을 물어죽일까 싶어 새끼 사슴이 어미를 따라 뒤뚱거리며 초원 저 멀리 짙은 저녁놀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람들이 배불리 먹어야 하고 목장의 소나 말과 양들이 배불리 먹어야 하는 것처럼, 그 가엾은 사슴들도 배불리 먹어야 한다.”


북대황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목숨을 부지할 목장을 일궜고, 원래 북대황의 주인이었던 곰이나 승냥이들은 온몸으로 인간들의 개척사를 막았다. 북대황 사람들은 자신들이 북대황의 주인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하여 목장까지 찾아와 쥐도 새도 모르게 울타리를 뽑아가거나 먹지도 않을 옥수수를 모조리 따서 온 밭에 흩어놓는 곰의 행패를 원망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활환경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지만 북대황 사람들은 그것을 곰의 천진난만한 장난이라 믿는다. 강가에 가서 아무 일 없이 물가의 돌멩이나 바위를 드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심심한 곰을 바라보면서 북대황 사람들은 인간들과 똑같이 심심해하는 곰에게 동지애를 느끼고는, 크게 웃어넘긴다. 

 

 

《북대황》매제민(梅濟民) 지음, 최홍수 옮김 디자인 하우스, 1992
 


북대황을 읽을 때마다 나는 사방 오백 리의 대평원에 목장이라곤 두 개밖에 없는 광야에서의 삶을 상상한다. 사방 오백 리의 대평원을 점유한 것은 인간도 곰도 승냥이도 초원의 풀도 아니다.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때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때로는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갈 뿐이다. 인간이 그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 북대황의 인간만이 아니라 근대 이전까지 인간 대부분의 삶이 그러했다는 사실,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할수록 놀랍다. 고작 이백여 년, 근대의 인간만을 우리는 인간이라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큰 눈이 흩날리는 밤이면 목장에서는 희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든 가축들이 빽빽이 몰려 땅에 엎드려 있고, 그 위에 눈이 수북히 쌓인다. 얼핏 보면 무덤들이 총총한 묘지 같아 그지없이 처량한 분위기를 자아낼 뿐, 숱한 생명들이 눈 밑에 엎드려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다.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 밤에, 가축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쥐죽은 듯 고요하게 자고 있는 것일까? 눈 밑에서 수초가 풍성하던 여름을 그리는 것은 아닐까?”


반내골에서의 겨울도 그랬다. 북대황의 겨울처럼 혹독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전엔 그곳에도 눈이 많았다. 한가닥 신작로와 마을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에 잠기면 사람들은 저마다 집에 틀어박혀 안방 가득 쌓아놓은 고구마를 삶아 먹으며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겨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년 봄을 기다리며 초라한 제 자신의 내면에로 침잠하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해도 인간은 겨울의 혹독함을 뛰어넘을 수 없었으므로.


 《북대황》이 기록하고 있는 대륙의 풍경은 이제는 북만주 대륙에서 볼 수 없는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 초원에도 자본이 상륙하고 거대한 도시가 들어섰다. 인간에게 굴복당한 대자연을 이제는 몽골 초원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몽골에도 자본의 침투는 이미 시작되었다. 생선이나 야채를 잘 먹지 않던 몽골 사람들이 연어 통조림으로 생선을 먹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야채를 재배한다. 철도를 통해, 혹은 아직 포장되지 않는 도로를 통해 공수된 음식들이 삼백만 명 이상의 인간을 허용하지 않았던, 초원이 탄생한 이래 지켜져왔던 자연의 질서를 머지않아 깨뜨릴 것이다.


어떻게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진다. 결핍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온전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오만이, 결핍을 채우려는 무한한 욕망이 인간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몇 년 전 가을, 알타이 산맥을 지날 때 느닷없는 눈을 만났다. 평원은 끝이 없었고, 평원 위로 하염없이 눈이 쏟아졌다. 그 눈 사이로 작은 초원 여우가 내달렸다. 2000km를 달리는 동안 한 번도 길을 잃은 적 없던 노련한 몽골인 운전수는 몇 번이나 차를 세웠고 눈에 파묻힌 초원을 가늠하여 길을 찾았다. 그 사이에도 차의 시동은 끄지 못했다. 영하 30℃를 밑도는 날씨, 혹여 다시 시동이 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눈에 파묻히게 될 터였다. 은백의 초원 위에서 우리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내 마음에도 눈이 쌓인 듯 고요했고, 고요히 맑았다. 그 순간 나는 대초원에 내려앉는 한 송이 눈인 듯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무시무시한 대평원과 일대일로 마주한 거인이었다. 그날의 느낌이 바로 ‘북대황’의 세계다.    

 


글을 쓴 소설가 정지아 님은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습니다. 1990년 장편《빨치산의 딸》펴냈으며 소설집으로《행복》,《봄빛》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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