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살림,살림

[ 교육살림 ]

국영수 대신 인문학과 농업을 가르치자

글 이계삼

 

오늘 수능 시험을 치렀다. 예년처럼 학교 앞 응원이 없어져서 무척 좋았다. 그 추운날 새벽부터 자리잡고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는 아이들을 보는 게 맘이 영 불편했는데, 다행히 신종플루가 이 응원을 잠재워 주었다. 나는 신종플루 확진환자 격리 고사장 감독을 맡았다. 우리 학교에 배정된 수험생 중에는 확진환자가 1명밖에 없어서 나로선 좀 느긋한 분위기에서 감독할 수 있었다.


몇 년 전이었던가,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이 시작될 무렵,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수전증 환자처럼 시험지를 덜덜 떨며 펼치는 남학생을 본 적이 있다. 또 다른 어느 해, 종료령이 울렸는데도, 답안 표기를 다 하지 못해 거의 울상이 되어 답안지를 마킹해 나가던 어느 여학생은 끝내 몇 문제는 답안을 다 표시하지 못하고 답안지를 내야 했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올해는 제발 목숨을 끊는 아이가 없어야 할 텐데…, 수능 때마다 하는 걱정이다.


그런데 이렇게들 고통스런 시험을 치르고 대학을 가지만, 한 학기만 지나서 만나보면 아이들은 한껏 풀이 죽어 있다. 대학 생활이 기대했던 것만 못한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살아야 할 일들로 걱정들이 태산이기 때문이다.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3월이 지나고 나면, 꿈꾸던 대학생활은 어느새 사라지고, 고3시절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남자 아이들은 한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해서 입대를 하면서 2년 뒤를 기약한다. 그뿐인가. 대학 고학년 아이들의 삶이란 듣다보면 눈물이 날 정도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과 너무나 비교되고, 이렇게 막막한 처지에서 왜 20대 젊은이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지 그게 신기할 정도다. 물론 이 모두는 취직이 안 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내가 교단에서 맨 처음 만난 아이들은 지금 스물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있는데, 임용고사에 붙어 교사가 된 아이들 몇을 제외하면 여태껏 정규직이 되었다고 알려진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얼마 전,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 임용고사에 재수하는 아이를 만났는데, 힘들다고 하소연이 대단했다. 그래도 요즘 세상에서는 정규직 평생 직장을 향한 관문 중에는 초등 임용고사의 문턱이 제일 낮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올해는 4대강 사업 때문에 교원 정원이 줄고, 또 몇 년간의 높은 경쟁률로 응시생은 넘쳐나고, 교대 1학년 때부터 시험을 준비하는 문화가 자리잡다보니 한두 문제 차이로 당락이 갈리고, 그래서 시험 스트레스가 엄청난 모양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오면서 내게도 분명한 현실 감각이 생겼다.《88만원 세대》의 지은이가 말하는 바와 같이, 20대의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위축에도 그나마 삶이 이어지는 것은 이들의 부모인 50대가 아직 정규직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런 추세가 10년만 더 지속되어 20대 30대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나 산업예비군으로 채워지고, 60대가 된 이들의 부모가 은퇴하게 된다면 한국 사회의 경제적 몰락과 공황 상태는 필연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일시적인 국면인지, 아니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상황인지, 그리고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말이다. 로마클럽에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인구와 경제 성장이 지구적 제약에 가로막혀 21세기의 인류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경고를 세상에 던진 것이 1972년이었다. 경제학에서는 대체로 1970년대를 기점으로 산업화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양적 팽창과 고이윤 창출이 정점을 기록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윤율이 저하되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무기를 통해 이러한 위기를 자국의 사회적 약자들이나 제3세계에 떠넘기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이 위기에 대응해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악마여서가 아니라, 이 체제가 자본가와 권력자를 악마 노릇을 하도록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어서 함부로 부리고 손쉽게 해고하는 것도, 제3세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사실상 산업 노예로 인간 이하로 부리다가 내쫓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 체제의 자연스러운 운동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체제가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부모들은 “이제 웬만해선 비정규직”라는 사실을 거듭 되새겨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도합 16년을 온통 지옥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이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이 되기 위해 이 미친 경쟁에 뛰어들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그래도 선진국 중산층 수준의 물적 풍요와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해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자식을 이 경쟁 대열에 동참시켰고 그래서 아이들의 고통에 늘 마음 저렸던 이들, 그리고 가난은 재앙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향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임을 믿는 이에게는 그야말로 신천지의 도래와도 같은 계기를 열어줄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들의 시선은 붕괴 이후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가 지녀야 할 진정한 예지(叡智)인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국어 영어 수학이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인문학’과 ‘농업’이다. 인문학은 문(文)•사(史)•철(哲)이다. 문(文)은 인간을 언어적 존재로써 완성시켜주며, 그 너머의 세계로 초대해 준다. 사(史)는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르쳐 줌으로써 우리의 삶에 역사적 좌표를 부여해 준다. 철(哲)은 인생의 의미를 질문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는 결국 성찰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사•철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물적 조건과 상황에 놓이건, 엉터리없는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농업의 가치이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불과 10년 안으로 농사를 지을 세대는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그리고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이어지면서 식량 생산이 타격을 받게 되면 식량 가격이 치솟을 것이다(1972년 세계 밀생산이 2.4%감소했을 때 밀 가격이 3배 이상 치솟은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전체 먹을거리의 75%를 수입해서 먹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혹시 우리를 먹여 살려주는 수출이 때맞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작년 재작년 이집트와 필리핀, 아이티를 위시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 그리고 가까운 북한이 겪고 있는 사태를 재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의 가치는 이러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만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 소농’들의 마을이야말로 ‘진보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이제 아이들의 미래는 이렇게 정립되어야 한다. ‘계약과 해지를 반복하는 도시 비정규직 산업 프롤레타리아로 살 것인가, 아니면 마을에 뿌리내린 독립적 소농으로 살 것인가’로 말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이처럼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수없이 이야기해왔다. 그래서 농과대학으로 진학한 아이는 많지만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아이는 별로 없다. 지금 자발적인 귀농을 실천하는 사람들 말고 생업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디 있겠는가. 바로 10년 뒤의 미래를 생각해도 너무나 상식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 ‘제정신이 아니어야’ 결실을 맺는, 상식과 현실의 이 막막한 거리를 좁히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학교에서 아이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집에서 부모가 청소를 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세탁기 돌리는 법을 모르는 고3 아이가 있다. 이제 학교 화장실 청소는 청소대행업체에서 해 주고 있다. 농사일을 위시하여 육체노동의 가치를 가르치는 부모, 학교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옥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이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이 되기 위해 이 미친 경쟁에 뛰어들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올 한 해 인문학과 농업의 가치를 가르치는 일을 직접 실행에 옮겨 보았다. 지난 1학기 동안 나는 평소 전국국어교사모임을 통해 교류해왔던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여러 선생님들과 부산대 점필재연구소와 함께 청소년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40~50명 정도 아이들을 생각했는데, 부산, 울산, 밀양 지역에서 2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 아이들은 고병권, 배병삼 선생과 함께 니체와 <논어>를 읽고 토론하고 글을 썼고, 위안부였던 길원옥 할머니의 피맺힌 삶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 강좌는 여름방학 끝무렵 1박2일의 캠프로 진행했는데, 아이들은 모둠별 발표회를 밤을 꼬박 새면서 준비했고, 정말로 유쾌하고 발랄하게 지난 한 학기동안 강좌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번 여름방학 때 나는 대학 1학년이 된 아이들 다섯 명과 함께 풀무학교 전공부에 다녀왔다. 풀무학교 전공부는 우리나라에서 인문학과 농업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는 거의 유일한 교육기관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아이들은 뜻밖에도 그 시간을 너무도 행복한 체험으로 기억해 주었다. 그것은 ‘육체노동의 기쁨’에 대한 자각이었고, 농업에 대한 신앙을 체현하고 있는 스승들과의 만남이 준 감동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농사일이 의외로 즐거웠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정말로 기뻤고, 큰 희망을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에게 꿈이 생겼다. 그것은 인문학과 농업의 가치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비록 농사일은 서툴지만, 인문학에 대해서는 어설프게나마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나는 조금씩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몰락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두려워하든 말든 이 체제의 몰락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조금만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이 몰락은 또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크나큰 기회가 될 것이다.


4대강 사업이 끝내 시작되고 말았다. 이놈의 한국 경제가 하루 빨리 망해버리기를, 재개발이고 철거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덜이 나 버리기를, 나는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    

 

 

글을 쓴 이계삼 님은 고향인 경남 밀양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하는 것을 일생의 행운으로 생각하며 삽니다. 아이들과 함께 펼쳐놓고 뭘 먹을 때가 제일 좋습니다. 가끔 여러 매체에 교육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그 글들을 묶어 얼마 전《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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