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호 2015년 11월호 살림,살림

[ 아이의 책 읽기-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알아야 할 세 가지 ]

자연스럽게, 설명하지 말고 되풀이해서

글 오혜경

책을 읽어 줄 때는 아이의 기분이 가라앉고 외부의 방해가 들어오지 않을 만한 시간대를 정해 놓고 하는 게 좋습니다. 시간을 정해 놓으면 아이가 책 읽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읽어 주세요

어른이 아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직접 책을 읽어 줄 때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텔레비전이나 음향기기 같은 기계음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일방적입니다. 서로 소통할 수 없지요. 책을 읽어 줄 때 아이가 저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나 말을 통해 또는 어느 부분에서 더욱 빛나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 읽어 주는 어른은 아이와 함께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될 때 말로 하는 이야기 나누기나 토론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문학을 통해 자기 세계를 넓혀 갈 수 있습니다.

방과후교실에서 만난 5학년 리아는 말이 없고 무표정한 아이였습니다. 책을 읽어주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느껴졌지만 끝나면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어요. 리아를 만난 지 넉 달이 되어 갈 때 《그림형제 동화전집》의 <배낭, 모자, 뿔피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주인공인 막내는 숯쟁이에게 요술 식탁보를 주고, 두드리면 무장한 병사들이 나오는 배낭을 받아 길을 떠납니다. 막내는 조금 가다가 배낭을 두드려 나타난 병사들에게 식탁보를 가져오라고 하지요. 이 장면에서 리아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앞으로 모으고 몸을 부르르 떨며 웃었어요. “리아야, 좋아?” 하고 물으니 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상해요”라고 말했어요. 함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아이들은 크게 웃으면서 “헉!”, “으아, 겁나 사기다”라고 말했지요.

리아에게 뜻밖의 대답을 듣고 아이들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상하다’는 말이나 ‘사기’라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요. 그런데 아이들의 말에 집중해 보면 꼭 나쁜 부분에서만 부정적인 말을 쓰는 것은 아니었어요. 말은 안되지만 너무 통쾌하고 좋을 때도 그런 말을 쓰는 것을 자주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말의 이면에 어떤 것들이 더 있을까 궁금해지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나도 그 이야기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지요.

책을 읽어 줄 때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글자 그대로 자연스럽게 소리 내어 읽으면 됩니다. 구연은 연극처럼 이야기하는 것으로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극본을 만들고 여러 가지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지만, 책 읽어 주기는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구연에서 얻는 재미와 책 읽어 주기에서 얻는 재미는 다릅니다. 책 자체에 중심을 두어 좋은 책을 아이 스스로 읽듯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 스스로 책 읽는 힘을 기르는 데는 책 읽어 주기가 좋습니다.

 

질문을 격려하되 미리 설명하지는 마세요

아이가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 질문을 하거나 다른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질문은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게 느껴집니다. 더구나 질문을 받아 주다 보면 이야기가 다른데로 흘러가서 결국 책을 다 읽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책은 끝까지 못 읽어도 괜찮습니다. 그 시간에 책을 다 읽지 못했더라도 이야기가 좋았다면 아이는 언젠가 다시 그 책을 찾게 됩니다.

다만 아이가 하는 말은 그 아이만의 감상에서 나온 것이므로 내용과 관계없이 보이더라도 격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어떤 것이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질문을 떠올리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한다며 면박을 주거나 그 시간에 반드시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말을 차단한다면 아이의 감상은 닫히고 맙니다. 어른이 책을 읽어 주고 아이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온전히 아이의 것으로 체화됩니다. 아이가 이야기를 감상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라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 내용을 이해했는지,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지 지나치게 고민합니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추리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떠올리고 부족한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워 가며 모르는 것을 알아 갑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미리 설명하고 쉬운 말로 바꾸거나 그 부분을 빼고 읽는 것보다 그대로 읽어 주는 게 좋습니다.

6학년 현욱이가 《산적의 딸 로냐》를 읽고 와서 “이거 재밌던데요. 그런데 잘 이해 안되는 게 있어요”라며 그 부분을 펼치고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었는데 현욱이는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어디야?” 하고 물으니 “이제 다 이해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앞뒤 관계를 통해서 내용을 이해하고 말의 뜻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말의 의미도 알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책은 되풀이해 읽어 주세요

민수를 처음 만난 날, 민수는 1분에 몇 번씩 “선생님, 그런데요…” 하며 나를 부르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녔어요. 나는 민수 옆에 서서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에 실려 있는 단편 동화 <이야기>를 읽어 주었습니다. 민수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서 민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읽어 주었지요. 민수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를 한 번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나는 이 책을 매번 가지고 가서 민수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방학을 보내고 거의 한 달 만에 민수를 보게 되었는데 내가 꺼내 놓은 다른 책을 보더니 “선생님, 그거 읽어 주세요. 그그그 개구리랑 걔랑 나오고”라고 말했습니다.

나 “아~ 개구리와 두꺼비? 오호, 민수 그 이야기 생각나?”

민수 “예. 걔가요오. 그그 이야기를 해 줄라고 머리를 꽝꽝 벽에다가 그러고요, 또 물을 머리에다가 붓고오, 또또 그그….”

나 “물구나무?”

민수 “예, 물구나무를 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이야기가 안 생각나 가지고요. 기분이 안 좋아서요. 이번에는 그그 친구가 이야기를 해줬어요….”

마구 돌아다녀서 도움선생님이 옆에 앉아 있어야만 했던 민수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건 아주 큰 힘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좋은 책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 주는 것을 권합니다. 읽어 주는 어른과 듣는 아이 모두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면서 문학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이제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럼 “이야기 끝!” 하고 끝내면 됩니다. 곧바로 아이에게 줄거리를 확인하거나 독후 활동을 시키지 말고 되도록이면 자유로운 시간을 주어 아이들 스스로 공상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읽고 나서 아이 스스로 이야기의 여운을 느껴 보도록 뒹굴뒹굴할 시간을 주세요.

 

다음 호에서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www.childbook.org

 

 

↘ 오혜경 님은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옛날이야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야기의 힘이 세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해에는 동료와 함께 《옛날 옛적 갓날 갓적 2》를 펴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