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살림,살림

[ 가까운 먹을거리 1 ]

레디 액션! 각본 없는 드라마가 시작되다_촬영감독 장성백의 잘 먹고 잘 살기

글·사진 김현경

 

“글쎄, 한 100인쯤 안에 들려나?”  


장성백 씨는 멋쩍게 말했지만, 실제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꽤 이름난 영화 촬영 감독이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과 <활> 등의 촬영을 맡았고, 촬영 미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카메리미지 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촬영을 전공한, 영락없이 사진쟁이인 이 남자를 경기도 남양주의 한 텃밭에서 만났다.


전국귀농운동본부의 텃밭보급소에 소속된 이곳 사능리 텃밭에서는 전체 2,400평 정도의 규모에 60여 명이 각기 5평 이상의 텃밭을 맡아 각종 채소는 물론 쌀과 콩, 밀 등을 함께 재배하고 있다. 장성백 씨도 올봄부터 이곳에서 주말을 고스란히 투자하고 있다.


“제가 우리집 주부입니다. 아침에 아이들 밥해 먹여 학교 보내고, 아침에 아내도 출근하고 나면 집안 정리하고, 먹을거리도 장만해야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요. 아내는 보험회사 매니저인데 나름대로 그 분야에서 인정도 받고, 또 본인 스스로 일에 대한 욕심도 크죠. 집에 들어오면 한밤중일 때가 많으니 주말에는 좀 쉬어줘야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살림을 도맡게 되었네요.”

 

 ●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장성백 씨.
 [사진 제공_조우필름]

●● 전라도에서 올라왔다는 토종 양파 모종.

 


집에서 직접 살림을 살다보니 자연스레 먹을거리에도 좀 더 많은 관심이 가고, 그러한 관심이 작물을 직접 재배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어 이제는 카메라보다 흙을 매만지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됐다.
 

“저는 영화판을 떠난 게 아닙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계속된 경기 침체 때문에 한해에 제작되는 영화가 2, 3년 전보다 4분의 1로 줄었어요. 영화는 좋지만 그렇게 대폭 작아진 영화 시장 안에서 일을 맡기 위해서는 촬영 외에 해야 할 것들이 많죠. 일종의 영업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게 천성에 맞지 않아요. 그런데 밭에서는 원치 않는 일을 무리해서 하는 법이 없어요. 또, 영화를 예술이라고 하지만 농사야말로 진짜 예술이거든요.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죠.”

 

여럿이 함께 하니 더 쉽고, 즐겁다


장성백 씨가 영화판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럿이 함께 하는 팀작업이라는 것인데, 이곳 텃밭에서도 그의 ‘협동정신’이 빛이 났다. 개인이 분양받은 텃밭 외에 15명 정도가 함께 1,400평의 밭에서 무, 콩, 밭벼, 밀, 양파 등을 함께 기르고 있는데, 대규모 영농처럼 농기계를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 많아 보였다.

 

● 조금만 몸을 놀려도 너른 들판은 곧 그득한 양파밭이 된다.

●●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에서도 조금만 노력하면 수확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 소변을 받아오면 양질의 거름이 된다.


땅 주인이자 이곳 텃밭에서 함께 농사짓고 있는 안익준 씨가 며칠전 전라도에서 직접 가져온 양파 모종을 남자 셋이 쪼그리고 앉아 심기 시작하니 그 넓던 빈 들녘이 금세 양파밭이 되었다.
텃밭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안익준 씨는 전업 농부라 할 정도로 매일 이곳에서 농사일을 돌보는 데 농사에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어려움 없이 밭을 가꿀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곳 텃밭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매년 3월초 전국귀농운동본부를 통해 경작 신청을 하면 되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한 해 동안 농사지을 수 있다.   


이곳 텃밭 농부들 사이에서 장성백 씨는 빼어난 음식솜씨로도 유명하다. 아무래도 예술가이다보니 감각은 좀 있겠거니 싶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호응도, 본인의 음식예찬도 예사롭지가 않다.


“고기, 생선, 가공식품은 빼고 집에서 필요한 부식거리는 모두 이 밭에서 다 나옵니다. 집사람이 좋아하는 토마토도 거뒀고, 큰 애가 좋아하는 참외, 수박, 작은 애가 좋아하는 고구마, 땅콩도 심었더랬죠. 이렇게 심어 가꾸면 그대로 가족들이 좋아하는 간식과 반찬이 뚝딱 뚝딱 나옵니다. 그 외 파김치, 열무김치, 배추김치도 제가 직접 담그고, 이곳 텃밭 사람들과 함께 된장, 간장, 고추장도 함께 담가서 아예 장독을 여기 두고 먹습니다. 우리집이 여기서 10분 정도 떨어져있는데 다른 어떤 먹을거리보다 신선하고, 안전하고, 맛있는 식재료를 공급하는 셈이니까 무얼 만들어 먹어도 맛있을 수밖에요. 또 복잡하게 원산지 확인할 일도 없고, 친환경 인증을 따질 필요도 없지요.”

 


직접 지어본 자만이 맛보는 그 맛!


장성백 씨의 똑소리나는 살림솜씨는 그 맛뿐만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익히 소문이 날 정도인데 지난 여름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취재를 해갈 정도였다. 일단 아이들도 직간접적으로 텃밭 농사를 함께 체험하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자연스레 매끼니 마다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습관도 생겼다고.


또 작은 아이는 잠자리채 하나 들려서 밭에 풀어 놓으면 하루 종일 신나게 뛰노는 데 그래서인지 더 자연친화적인 생활 습관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한다. 또한 음식을 할 때는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는데 감자를 깨끗이 씻은 후 벗겨낸 감자껍질은 따로 튀겨서 감자칩을 만들고, 국물을 내고 남은 다시마도 따로 맛깔나게 양념을 해서 반찬을 만들 정도다. 

 
그 외에도 텃밭을 하면서부터는 두 아들과 함께 집에서 소변을 빈병에 담아 오는데, 일주일 정도 숙성한 뒤 물에 섞어 밭에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된다. 또 양변기 안쪽에 플라스틱 통을 걸쳐 놓고 밀껍질을 뿌린 후 대변을 받아 와서 퇴비를 만드는데 직접 밀농사를 짓고, 그 껍질까지 이용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그 활용도가 높다고 한다. 

 

● 텃밭 이웃과 함께 하는 점심상은 소박하지만 그득하다.

●● 옆집 형님 밭에서 웃자란 당근 3개를 서리. 장난기 가득한 그의 얼굴은 금세 소년이 된다 . 

●●● 수확을 앞둔 밭벼에 나비가 앉았다. 사진쟁이 장성백의 마음도 잠시 쉬어가는 나비와 같을 것이다.
 

 


오전 농사를 대충 마치고, 몇몇이 둘러앉아 점심상을 펼쳤다. 이날 아침, 총각무 밭 사이사이에 웃자라있던 아욱을 뜯어 그 자리에서 된장국을 끓이고, 갓뽑아 올린 무로 만든 무채나물에 올해 수확했던 통밀을 넣어 지은 밥을 조금씩 나눴다. 그야말로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한입 한입 약밥이라 생각될 정도로 귀하게 여겨지는 참 맛나는 밥이었다.


“가을 아욱은 문 잠가놓고 혼자 먹는다고 했어요. 아주 달아요. 많이 드세요.”
“그냥 사다 먹을 때는 몰랐어요. 그냥 유기농 좋은 줄만 알았지. 그런데 직접 지어보니까 누런 떡잎도 다 아깝다니깐.”
“무는 뿌리도 뿌리지만, 무청이 진짜지. 고걸 삶아다가 볕 따뜻하고 바람 선들선들한 데 말려놔봐. 겨우내 을매나 귀한데 고것이….”


“우리 콩 타작하면 두부도 해야지. 올해는 쥐눈이콩으로도 한번 해볼까? 이번에는 고기 좀 덜 가져왔으면 좋겠네. 고기가 아니라 두부가 메인이니까 말이여.”
“요게 지난번 딴 그 고추로 만든 부각이에요. 애들한테는 설탕을 살짝 뿌리고, 어른들은 소금간만 슬쩍 해도 좋더라고요.”
“장 감독, 막걸리 좀 해줘. 집에서 하지 말고 여기 와서 만드는 것도 보여주고!”


밥상에서 오고가는 대화는 흔하디 흔한 먹고 사는 얘기들이었지만, 남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계절과 함께 맞춰 살아가는 한해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담겨 있었고, 온전한 생명을 받들어 모시는 철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날 장성백 씨는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막걸리를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그가 막걸리를 만드는 날, 이 동네 밭에는 또다시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지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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