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특집]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이웃나라의 잠 ]

우리 같이 잘까요?

글·사진 이영란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낮잠을 자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농사일을 하고 출근을 하는 그들은 결코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다.

 

라오스에 다녀왔다고 하면 ‘라오스가 어디야?’하고 묻는다. 동남아시아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태국, 베트남 옆에 있는 최빈 개도국?’하고 묻는다. 맞다. 라오스는 동쪽에서 시계방향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타이, 버마(미얀마), 중국으로 둘러싸인 바다가 없는 나라다. 또 라오스는 매우 가난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자료만 봐도 이웃 캄보디아, 버마보다도 사정이 어렵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국제기구와 여러 나라 정부는 물론 비정부기구들도 라오스를 돕는데 힘을 보태왔다. 이렇게만 보면 라오스는 참 척박하고 위태로운 나라인 것 같다. 그러나 라오스는 바다는 없지만 바다보다 넓고 너그러운 동남아시아의 젖줄 메콩 강을 1/3이나 차지하고 있고, 화폐로는 따질 수 없는 풍요로운 아열대 기후와 한반도보다 조금 큰 영토에 채 700만이 안 되는 사람들이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


“싸바이디!”
라오스 수도 위양짠에서 한국해외봉사단 현지훈련기간 동안 라오스어를 처음 배웠다. 라오스어에는 영어나 일어처럼 아침 점심 저녁 인사가 따로 없고 우리말처럼 언제든 만나면 두 손을 모으고 싸바이디(안녕하세요) 하면 된다.


“낀 카오 래오 버?”
훈련을 마치고 시골마을 싸이냐부리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인사말이다. 밥 먹었어요? 상대방의 안부 중 가장 중요한 것, 아침 점심 저녁 제때 밥을 먹었는지 묻는 것이다. 라오스어는 어순도 영판 다르고 성조까지 있어 내게는 무척 어려웠지만 말 안에 담긴 사람들의 정서는 전혀 외국같지 않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와 똑같다, 정말 이곳이 이역만리 타향일까? 그곳 사람들이 주는 푸근함에 긴장이 풀어져 한없이 늘어졌다. 내가 외국에 살고 있고 생존을 위해, 활동을 하려면 라오스어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목적의식마저 풀어져 있을 때, 갑자기 이런 말이 들려왔다.

 

“씰리펀, 같이 잘래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씰리펀은 나의 라오스 이름으로, 상서로운 행운이라는 뜻이다). 내가 활동하던 곳은 싸이냐부리의 읍내 중학교였다. 학교는 내가 파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5월 중순부터 석달이 넘는 긴 방학에 들어갔다. 라오스어 공부, 현지조사, 주요기관 방문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 친한 선생님들과 함께 역시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 부부의 원두막으로 놀러갔을 때였다. 라오스, 너무나 평화로운 고향 같은 풍경에 넋을 놓고는, 또 마냥 개구쟁이 같은 선생님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행복감에 눈물이 날만큼 가슴이 부풀어 올라있었는데 이런 소릴 듣다니. 내가 뭘 잘못했나? 순간 정신을 수습하고는 귀로 들어오는 모든 라오스어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한 선생님은 너무나 태연했다. 자그만 베개 하나를 나에게 건네더니 자신은 다른 벨만한 것을 찾아서는 넓은 원두막 한쪽으로 가 누웠다. 나와 함께 온 다른 선생님도 베개 하나를 찾아 베고 그 옆에 누웠다. 원두막의 주인, 따니 선생님이 우리가 먹은 점심 설거지를 하고 뒤늦게 원두막을 올라와 둘러보더니, 아기를 가져 부른 배에 이미 엄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나는 집에 가서 자고 올 테니 씰리펀은 여기서 자요, 잘 자요!”
그제서야 굳었던 내 표정이 풀리면서 픽픽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주인집 둘째 아들 이름은 아이였다. 오빠, 형이라는 뜻이다. 아이는 열여섯 살이지만 정말 오빠라도 되는 양 나를 잘 챙겨줬다. 성조에 유독 약한 나를 위해 글자는 같지만 성조가 다른 단어들을 반복해 읽어주기도 하고, 저녁 늦게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도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 하루 동안 별일은 없었는지 물어보고 들어주었다. 아이는 밥을 먹고는 내가 살던 집에서 잠을 자고 가곤 했다. 나는 아이가 나를 친 누나처럼 생각해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웃집에서도 제집처럼 발 뻗고잔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라오스 사람들에게 낮잠은 세끼 밥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과였다. 특히 내가 살던 시골 사람들은 이웃집에서 밥을 먹는 일도 흔했고 밥을 먹고는 그 집에서 잠을 자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어도 자기 집이 번잡하면 가까이 있는 친구나 친척들의 집으로 건너가 잠을 자는 것도 예사였다. 집과 같은 사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라오스의 업무 시간은 보통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 가운데 점심 휴식시간이 정오부터 2시까지다. 대부분 동트기 전부터 일어나 움직이기 때문에 라오스 사람들은 아침 출근이 빠른 편이다. 학생들은 수업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정도 일찍 등교해 있기도 했다. 4교시 수업은 보통 11시 40분이면 끝이 났다. 수업을 마치고 창밖을 보면 건너편에 있는 초등학교는 더 일찍 파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는 학생들의 자전거 행렬이 이미 길을 가득 메우고 있기 일쑤였다. 그런 어느 날 나는 학교가 파한 뒤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요금충전카드를 사려고 라오텔레콤(라오스 통신공사)에 들렀다. 11시 45분, 라오텔레콤 주차장에는 이미 오토바이들이 다 빠져나가고 텅 비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창구를 정리하고 나가려던 직원 한 사람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5만 낍(우리 돈 5천 원)짜리 전화카드 두 장을 꺼내주었다.


작열하는 햇빛을 뚫고 10여 분 자전거로 달려 집에 도착하니 몸은 땀으로 샤워라도 한 것 같았다. 울타리를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경찰관인 주인아저씨 오토바이가 보였다. 주인아저씨는 시장에 들러 땀막훙(파파야 생채)을 사왔을 것이다.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약국을 하는 주인 아주머니 대신 두 아이들 점심밥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시원하게 씻고 편한 옷을 갈아입고는 땀 흘리며 들어서는 나를 내다본다. 정오, 이미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나다니는 사람은 물론 널브러져 있는 개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정적에 휩싸여 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라오스 선생님들이 그리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우리 시간 오후 2시, 라오스는 낮 12시였다. 나처럼 반가움에 들떠 전화를 받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목소리가 서먹하다. 막 낮잠에 들었다가 전화를 받았단다. 라오스 사람들은 보통 12시 조금 넘어서부터 1시 30분정도까지 잠을 잔다. 집안 일이 많은 여자들은 그보다 조금 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 오후 2시가 되면 다시 출근하고 등교한다.


집과 학교를 두 번 오가기가 힘든 학생들은 오후 수업에 오지 않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이 가끔 점심 도시락을 싸오기도 한다. 라오스 사람들은 매식을 안하는 것은 물론 아주 먼 여행길이 아니라면 대개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담임이 아니고 수업이 없는 사람들은 오후에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된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교실, 도서실, 교무실, 나무 그늘에서 세상을 구워버릴 듯이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낮잠을 잔다.

 

원두막에서 같이 낮잠을 즐기는 라오스 사람들.
그들은 지금의 불행을 견디고 내일의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라오스 사람들이 너나없이 낮잠을 자는 것은 우선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기후 조건 때문인 것 같다. 차양 모자나 양산 없이 라오스의 태양 아래 10분 이상을 버틴다는 것은 목숨을 건 무모한 행위라고 할 정도다. 라오스 사람들의 낮잠문화나 느릿느릿 행동하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게으를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대개 선생님이면서 농부이거나 공무원이지만 또 농부이기도 하다. 어린 학생들도 가족을 도와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 가족들 모두가 새벽같이 일어나 장작을 쪼개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가 하면 식전부터 논밭에 나가 일을 한다. 저녁에도 마찬가지고 휴일에는 이들 모두가 당연히 전업 농부가 된다.


그러나 라오스 사람들이 정말 낮잠을 잘 자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라오스 사람들은 결코 악착같이 일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목표를 과하게 잡지도 않는다. 나에게든 남에게든 고통을 견디며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불행을 참고라도 내일의 무엇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라오스 사람들은 늘 지금이 행복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라오스 사람들은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라오스에서 살 때는 나도 낮잠을 잘 잤다. 지난 7월과 11월 두 차례 라오스에 다녀온 뒤 나는 라오스에서 자지 못한 낮잠을 벌충이라도 하듯이 며칠에 걸쳐 길게 잠을 잤다. 라오스 사람들처럼 나도 낮잠을 잘 수 있게 되면 좀 더 행복질 수 있지 않을까. 자다깨다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글을 쓴 이영란 님은 2007년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으로 라오스에서 2년 동안 생활한 경험을《싸바이디 라오스》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요즘은 라오스 산골 학교에 발전기 보내주는 일을 꿈꾸면서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