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호 2015년 5월호 살림,살림

[ 갈등의 재발견-문제 해결보다 관계 회복 중심 ]

갈등전환은 질문이다

글 박지호

갈등전환은 갈등을 빨리 없애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대신 건설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선물이자 기회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이다(4월호 참고). 갈등은 보통 두 가지 상황,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 때와 누군가 잘못했을 때 일어 난다. 갈등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갈등전환의 시작이다.

 

 

 

갈등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내러티브(이야기)에 익숙한 공동체에서는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쉽다. 이런 ‘갈등종식 패러다임’에서는 갈등을 일으킨 문제의 원인 치유를 뒷전으로 둔 채 불편함을 일으킨 사람을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하곤 한다.

“누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나?”

“이 불편함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갈등은 불편함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갈등 유발자를 찾아 교정하거나 처벌하거나 공동체에서 나가도록 한다. 그를 비난하거나 모욕을 주고, 편을 가르거나 처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누가 갈등을 유발했는지 찾고 그 대상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세월호 사고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한 수사로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정작 유가족의 욕구를 철저히 외면했다. 유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구조와 실종자 수색과 진상 규명이었다.

 

내게 일어난 변화 중심으로 말하게 묻기

갈등에서 섣부르게 벗어나려 하는 대신 갈등을 창조적인 변화의 기회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우선 갈등의 성격과 원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흔히 갈등은 크게 두 가지 상황에서 일어난다. 변화가 생기거나, 누군가 잘못(범죄, 불의)했거나.

먼저 변화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 경우를 보자. 변화는 필연적으로 혼란을 유발하고, 불편함이 생기면 변화를 가져온 사람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흔히 리더십 교체기나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올 때 변화에 의한 갈등이 발생한다. 변화는 갈등을 초래하고,갈등은 다시 변화를 유도하는데 갈등전환은 갈등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유도한다. 갈등전환은 불편함과 혼란을 초래한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변화 자체에 주목한다.

회사원 A씨는 가족 사이에서 갈등전환을 적용했다. 그는 얼마 전 결혼 10년 만에 쌍둥이를 출산했다. 오매불망 아이를 기다려 온 부부에게 이보다 더 기쁜 변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라고 힘들지 않다는 법은 없다. 쌍둥이니 양가 부모님까지 육아에 총동원되었고, 부부 단둘이서 살던 집에는 순식간에 가족이 몇 배로 불어났다. 쌍둥이의 출현은 불편함을 가져왔고, 긴장을 만들어 냈다. 긴장이 길어지면 비난으로 넘어가게 된다.

A씨는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대화를 시도했다. ‘누구 때문에 불편한지’ 찾아 교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주목하도록 했다. 이때 초점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엄마는 “나름의 육아 방식이 있는데 존중받지 못해서 힘들다.”고 했고, 할머니는 “육아로 내 삶이 없어졌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만 먹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며 내심 걱정했다. 대화하면서 변화의 긍정적인 면도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기다렸던 손주를 보는 기쁨으로 고단함도 잊을 정도”라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가족 모두 현재의 불편함이 누군가의 잘못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변화가 만들어 낸 결과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변화를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변화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하며 ‘사람’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이슈’ 중심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또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논의하면서 갈등을 변화의 기회로 전환했다. 그리고 불편함에만 주목하고 있었는데, 쌍둥이가 가져온 기쁨을 이야기하며, 당연한 듯했지만 잘 느끼지 못했던 긍정적인 변화도 다시 확인했다.

 

잘못에 의한 갈등, 피해자에 주목해야

이와 다르게 변화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잘못(범죄)에 의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 ‘잘못’보다 ‘피해’에 집중해야 한다. ‘누가 잘못했는지’ 가해자를 찾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응보적 정의)’ 묻는 것이 아니라, ‘발생한 피해가 무엇인지,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회복적 정의)’ 물어야 한다. 질문의 대상에 갈등 당사자뿐 아니라 사건의 영향을 받은 공동체 구성원들까지 포함한다.

학창 시절, 도난 사건이 일어나면 선생님들의 반응은 천편일률이었다. 책상 위로 올라가 눈을 감고 손이나 걸상을 들라고 한다. 범인이 나올 때까지 야단치며 범인 색출 작업에 들어간다. 전형적인 갈등종식(응보적 정의) 패러다임의 접근이다.

잘못한 것도 없이 벌을 받는 학생은 교사에게 분노하고, 누군지 모를 범인에게 적개심을 품게 된다. 그 강도가 강해질수록 범인을 찾을 확률도 줄어든다. 섣불리 자수했다간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동시에 얻어터지게 되는데 어떻게 나오겠는가? 스스로 탐정이 되어 누가 범인일지 추측하는 사이 학생들 사이에 신뢰는 깨지고, 교사는 교사대로 권위가 떨어지면서 도난 사건으로 생긴 갈등이 더 큰 갈등을 불러온다.

동일한 도난 사건이지만 ‘갈등전환 패러다임’으로 접근한 사례가 있다. 회복적 정의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한국평화교육훈련원에서 소개한 사례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고 선생님 B씨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누가 범인인지’를 추궁하지 않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집중했다. 피해자에는 물건을 잃어버린 학생뿐 아니라 애매하게 의심받은 다른 아이들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선생님도 포함된다. 물건을 잃어버려서 속상하단 얘기, 괜히 의심받아서 불편하다는 친구들의 얘기, 어떻게 할지 당황스럽고 속상하다는 선생님의 얘기, 앞으로 무서워서 물건을 두고 다닐 수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선생님은 “그러면 이렇게 생긴 피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하고 질문을 던졌고,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아무도 안 보는 곳에 언제까지 물건을 갖다 놓자”고 제안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해자는 단지 탐나서 물건을 가져온 것뿐인데 그로 인한 피해가 생각 이상으로 크고 다양하단 사실에 직면하면서 반성하고, 훔친 물건을 해당 장소에 갖다 놓았다.

핵심은 물건을 다시 찾았는가에 있지 않다. 갈등이나 범죄로 인한 피해는 법규의 위반이 아니라, 관계의 훼손이다. 갈등을 해결해 낼 역량이 없으면 손쉬운 소송으로 일단락을 맺기 쉽다. 갈등을 통해 오히려 개인과 공동체가 성숙할 수 있는데 기회를 놓치고,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충돌로 갈등이 증폭되기 쉽다.

 

반드시 미래에 대해 소통해야

일방적으로 승패가 나뉘는 소송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당사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반성과 용서를 통해 화해와 회복, 재발 방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전환은 문제 해결보다 관계 회복에 중심을 둔다. 공동체가 문제를 직면해 함께 회복하고, 당사자가 직접 해결점과 재발 방지 대책을 찾는 과정을 거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 갈등이 보다 나은 공동체와 개인을 만드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갈등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재발을 방지하려면 미래에 대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갈등전환적 대화를 위한 구체적인 의사소통법과 기본 조정 원칙을 다음 호에서 소개한다.

 

범죄로 인한 갈등인 경우

 

갈등종식형 질문                               갈등전환형 질문

 

누구 때문에 불편하지?                       어떤 변화가 있었나?

어떻게 불편함(또는 사람)을 제거하지?   부정적 변화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범죄로 인한 갈등인 경우

 

갈등종식형(응보적 정의) 질문               갈등전화형(화복적 정의)질문

 

 

누가 잘못했나?                                  누가 피해자인가?

어떤 잘못을 했나?                              어떤 피해가 발생했나?

어떻게 처벌하나?                                피해를회복하려면 어떻게?

 

 

 

↘ 박지호 님은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싸움의 현장을 취재하다 얻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갈등에 대해 공부하는 것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미국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에서 갈등전환학을 공부하고, 한국갈등전환센터(하나누리 산하)의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 《갈등전환 : 갈등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한국갈등전환센터는 개인과 단체와 지역사회가 ‘갈등’을 긍정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연구·교육·실천하는 단체이다. 기업·단체·학교·교회 등에 갈등전환을 소개하고, 이론과 실습을 버무린 갈등전환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강의 신청 및 워크숍 문의 02-743-4113, JHP@hana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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