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특집]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잠에 대한 보고 4 - 사육 동식물 ]

우리도 잠 좀 잡시다

글 윤나래

 

‘빛공해’를 아십니까
 

에디슨이 1879년 최초로 전구를 실용화한 이래로 오랫동안 인공조명은 문명의 혜택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고 전기를 물 쓰듯 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소음공해처럼 과다한 빛 역시 환경 문제로 대두되고 이십 년 전 롯데월드가 문을 열었을 때, 건물의 현란한 네온과 놀이기구에서 나오는 조명으로 인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시설이 부근에 들어설 때 분쟁이 일어나는 명목은 주로 일조권과 조망권이지만, 밤이 되면 빛공해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야간도시경관을 정비한다며 건축물과 각종 시설 등지에 조명 설치가 한창이다. 겨울이 되면 시내 중심부를 밝히는 루미나리에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런 조명들은 대개 치밀한 계획 아래 설치되지 않는 듯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ㄹ백화점 앞의 가로수에 크리스마스 장식 조명이 설치되면 다음 주에는 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ㅎ백화점 앞에 등장한다. 광화문의 루미나리에가 화제가 돼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지방 도시 몇 군데서도 금방 따라한다.


보행자들 눈에는 즐거울지 몰라도 인근 사무실이나 거주민들에게는 밤새 반짝이는 불빛이 반가울 리 없다. 이들은 시각 자극 같은 아주 사소한 자각증상으로 시작하여 점차 수면장애와 잔상 현상 등을 호소한다. 조명이 매달린 가로수의 괴로움은 더 하다. 칭칭 감긴 전깃줄과 뜨거운 전구로 인해 가로수의 건강 상태가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 낮에는 광합성으로, 밤에는 호흡으로 성장하는 나무들이 대기오염과 더불어 또 하나의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식물, 재우지 말고 길러라


빛에 민감한 식물의 특성은 여러 가지 재배법을 고안하게 했다.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식물을 키울 때는 인공조명을 쬐어주라는 말도 들어본 적 있을 터이다. 모자란 빛을 보충해주자는 뜻인데, 더 나아가 식물을 정상 속도보다 더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한 조명을 켜기도 한다. 식물은 자라는 과정을 자체적으로 조절하는 물질인 피토크롬을 지니고 있다. 이 물질은 빛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빛을 인공적으로 조절해 생장을 촉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깻잎은 밤이 길어지면 꽃이 피는데 이를 막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야간조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재배방법이다. 밤에 2시간 정도만 쬐어주고, 해가 긴 5월에서 7월 사이에는 조명을 끄자는 것이 농촌진흥청의 권장사항이지만 생산량에 민감한 농가에서는 일 년 내내 조명을 켜두기도 한다. 일단 꽃이 피면 깻잎의 맛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사람의 입맛을 위해 들깨는 꽃도 피우지 못하고 잠도 빼앗기는 것이다.


또 점차 토양이 오염되고 지구온난화로 기후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게 되면서 농업계에서는 빛, 온도, 습도 등 모든 조건을 제어하는 ‘식물공장’의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하고 있다. 이런 식물공장은 계절과 장소에 관계없이 태양빛 대신 형광등, LED조명을 사용하는데 주로 잎 채소를 생산한다. 일본 식물공장 연구의 선구자인 히타치 중앙연구소의 타카츠지 마사모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재배한 양상추보다 식물공장의 양상추가 6배 정도 더 빨리 자란다. 자동으로, 게다가 연속 생산이 가능하니 그야말로 ‘공장’이라 하겠다. 다만 설비와 유지비용 때문에 보급은 어려운 단계다. 공장 재배 작물이 보편화하면 식물에게 ‘밤’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동물, 자지 말고 낳아라


동물 역시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있다. 밝아지는 밤 때문에 캄캄해야 살 수 있는 올빼미, 삵, 박쥐 등 야행성 동물들은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그러나 가장 처참한 사례는 인간의 수익을 위해 동물의 편안한 수면을 완전히 앗아간 양계장이 아닐까 싶다.


닭은 원래 수탉과 교미하지 않고도 날마다 알을 하나씩 낳는다. 달걀과 닭고기가 이토록 흔해진 이면에는 대규모 양계산업이 버티고 있는데 닭은 곧 쓰고 버리는 상품처럼 취급된다. 창문조차 없는 비좁은 계사에서 형광등 조명을 켰다 껐다 하는 것으로 시간을 알려주면 알을 낳는다. 공간이 좁으니 물론 앉지도 못한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닭들은 서로 쪼아대기도 하고 금세 병에 걸리기 때문에 사료에 항생제와 살균제를 많이 넣을 수밖에 없다. 이런 성분들은 모두 달걀에 농축되어 사람들이 먹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수평아리라고 죽음을 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암탉들도 6개월 동안 편안한 잠이라고는 누려보지도 못한 채 알만 낳다가 결국 닭고기 감으로 팔려나간다.

 


얻은 것은 효율, 잃은 것은?


식물공장과 양계장. 이 둘에서 공통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낱말은 바로 ‘효율’이다. 최소비용에 최대이윤. 이런 경제논리로 접근하는 이들에게 동식물의 수면이란 의아한 화두일 것이다. ‘더 싸게 달걀을 먹을 수 있다는데, 닭의 잠까지 신경 쓰라고?’


그러나 사료 값을 아끼려 도축한 찌꺼기 고기를 먹은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듯이, 부작용은 이미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성장호르몬 사료를 잔뜩 먹은 닭은 아이들의 조숙증과 아토피 피부염을 유발한다. 유전자변형 농산물도 처음에는 꿈의 작물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이들이 꺼리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식물공장에서 완벽한 제어 아래 자라는 식물들도 아직까지는 아무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가진 것을 온전히 활용하여 소박한 삶을 꾸려보려는 노력대신 무작정 더 만들어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 모든 환경문제가 그러하듯 잠이 부족한 세상과 생태계의 부작용도 이런 사고의 변주곡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대안인데, 일단은 제도적 장치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989년부터 도시 야간 경관이 생태환경과 시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15~20년의 장기계획을 세웠다. 조명의 밝기와 장소, 고즈넉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곳 등을 헤아려 야간 조명 설계를 재정비하는 작업이 이어지는 중이다. 한국은 한강을 지나는 다리에 야간조명을 설치하는 작업이 2003년 즈음부터 활발해졌다. 우리도 야간조명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또 과다한 조명의 경우 에너지 차원에서 규제도 가능하다. 장식용 조명의 시간대를 규제하거나 업체당 사용량 지침을 정한다면 유행을 따라 줄줄이 설치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동물보호법과 자연환경보전법을 손보아 동물들이 편안히 잠들 수 있을 정도의 복지를 보장해주고 가로수에 전선을 칭칭 감는 일은 최소한으로, 시간 규제를 두게 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사람들의 과다한 욕심으로 벌어진 일이다.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완벽한 해결책은 나부터 쓸데없이 늦게까지 깨어 있지 않고, 통닭 한 마리 덜 시켜먹고, 깻잎 한 장의 소중함을 자각하는 일 아닌가. 며칠정도 잠 푹 자면 온 세상의 평온한 잠을 위한 길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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