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호 2015년 5월호 살림,살림

[ 안녕하세요 ]

‘리얼 돼지’를 본 적 있나요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감독 황윤 씨

글 \ 사진 이선미 편집부

5월 7일 개봉하는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황윤 감독을 만났다. 그는 사람은 ‘잡식동물’이지만 지금처럼 고기를 많이 먹을 필요가 있는지, 그렇게 먹은 고기가 몸에 이로운지 되물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먹는 건 ‘고기’가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이라는 걸 거듭 이야기했다.

 

“돼지 역시 희로애락을 느끼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고통 없이 키워야 해요. 그럴려면 수가 적어야 하고, 결국은 우리가 적게 먹어야 하는 거죠.” 값싼 고기를 많이 먹으면서는 불가능하다는게 황윤 감독의 말이다.

 

“온전한 돼지를 만나는 여정 담았어요”

개봉을 앞두고 황윤 감독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저한테는 영화가 또 하나의 자식이에요. 자식이 태어나서 돌잔치하는 느낌이죠. 진짜 애도 키워야 하고, 두가지 엄마 역할을 하느라 바쁘네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총 4년 정도 걸려 만들어졌다. 2011년 초 기획해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다. 지난해 초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들을 찍었고, 그 내용을 담은 필름을 올해 2월 공식 초청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다.

황윤 감독은 이 영화가 “온전한 돼지를 만나는 여정을 담은 것”이라고 말한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어느 날, 살아 있는 돼지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아들 도영이와 돼지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돼지도 사람도 병들게 하는 공장식축산

우리가 먹는 고기 대부분은 공장식축산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황윤 감독은 대량생산을 위해 특히 암퇘지가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됐단다. “출산할 수 있다는 게 사람에게는 축복이지만 돼지에게는 재앙이고 천형이에요. 24시간 만에 도영이를 낳을 때 얼마나 아픈지 정말 죽고 싶었는데, 엄마돼지들은 죽을 때까지 새끼를 낳아야만 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죠.”

인공수정을 통해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엄마돼지는, ‘스톨’이라는 몸을 돌릴 수도 없게 좁은 금속 틀에 갇힌 ‘새끼 낳는 기계’일 뿐이다. “우리가 공장식축산을 일시에 없앨 수는 없지만, 지금의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건 알았으면 해요. 적어도 스톨은 안 쓸 수 있지 않느냐는건데, 그러려면 목소리를 내야 해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법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올해 동물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반려동물이나 실험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농장동물은 소외되어 있다. 참고로 유럽연합은 2013년 농장동물에 대한 스톨 사용을 금지했다.

단순히 동물복지 차원에서만 공장식축산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의 원래 이름은 돼지독감으로, 멕시코의 한 농장에서 처음 발생했다. 종간장벽이 있어 동물이 걸리는 바이러스에 사람이 걸리지 않는데, 밀집 사육된 가축을 매개로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켜 사람에게 전이된 것이다. “조류독감과 돼지독감이 사람 몸에서 합쳐지면 정말 무서운 일이 생길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손을 씻고 조심했는데도 도영이가 신종플루에 걸렸었어요. 변종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면역력 약한 아이들이 가장 취약하죠.”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전에 없던 질병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만큼 농장동물들이 햇빛을 보고 바람을 쐴 수 있게 하고, 밀집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면 예방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감기도 안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자란 동물은 병에 잘 걸리지 않아요. 언제까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동물들을 다 살처분할 건가요? 예방법을 따르면 굳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필요가 없죠.”

 

내가 정말 고기를 좋아하는 건지
남들 따라 먹는 건지

영화에서는 친환경 소규모 농장에서 키워지는 엄마돼지 ‘십순이’와 새끼돼지 ‘돈수’를 볼 수 있다. 이 돼지들은 비교적 자유롭고 고통 없이 지낸다. 하지만 수퇘지에게 나는 냄새인 ‘웅취’를 없애기 위해 새끼돼지일 때 거세를 하고 엄마돼지가 계속해서 새끼를 낳아야 한다는 점에서 역시 완벽한 대안은 되지 못한다. “관객들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고기를 아예 끊어야겠다, 아예 끊지는 않되 동물복지가 어느 정도 지켜지는 소규모 농장의 고기를먹어야겠다, 전처럼 고기를 먹되 먹는 양을 줄여야겠다 등으로요.”

소비자조합원으로서 “한살림 없으면 못 산다”고 말하는 그는 결혼하고 직접 요리하다 보니 자신이 고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단다. 영화를 찍으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돈까스를 끊었는데, 알고보니 고기를 좋아한 게 아니라 바삭바삭한 식감을 좋아한 거였다. “대학 신입생 때와 회사 신입사원 때가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계기였어요. 술도, 고기도 뭐든 잘 먹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였죠.” 윗사람이 주는 거면 뭐든 먹어야 하는 한국 문화에서 “고기 안 먹어요”라고 말하면 ‘까칠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었다.

영화에서 그의 남편도 야식으로 시켜 먹을게 마땅치 않아 치킨을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흔한 배달음식은 치킨, 피자, 족발, 돈까스 등으로 다 고기 요리다. “내가 정말 고기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면 남이 먹는 대로 따라 먹는 건가 생각하게 됐어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고기가 안 들어간 다양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를 텐데, 무언의 압박에 길들여져 있는 거죠.” 영화를 찍으면서 고기를 안 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농장동물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지만,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것도 크다고 했다.

 

돼지를 고기가 아닌 생명으로 볼 수 있을 것

그는 관객들에게 가장 보여 주고 싶은 장면으로 엄마돼지가 출산하는 모습을 꼽았다. “돼지 본연의 모습을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리얼 돼지’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외부인이라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고 엄마돼지가 낯설어 해 사고가 날 수 있는데도 출산 모습을 찍도록 허락해 준 농장에 죽을 때까지 감사할 거라고 했다. “십순이라는 느긋한 성격의 엄마돼지를 만나 아무 탈이 없었던 것도 정말 다행이었어요. ‘내가 간절하니까 우주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 자신이 엄마다 보니 새끼를 낳는 엄마돼지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고 한다. 어떤 생명이든 탄생하는 순간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아름답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고. “새끼에게 젖 먹이는 모습, 또다시 새끼를 낳기 위해 억지로 젖을 떼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나와 십순이, 도영이와 돈수가 자연스럽게 연결됐지요. 머리로 짠 게 아니라 마음으로 그렇게 됐어요.”

그는 전작 <작별>(2001), <침묵의 숲>(2004),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들에서도 지속적으로 동물 문제를 다뤄 왔다. “야생동물은 쉽게 죽임을 당하고, 실험동물은 화학 물질에 강제로 노출되죠. 반려동물은 사람들 입맛대로 길러지거나 버려지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약자가 농장동물이라는 게 그의 말. 가짓수도 제일 많고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고통스럽게 착취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 개나 고양이, 좀 더 나가면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정도죠. 저도 그랬거든요. 먹는 동물과 반려동물 사이에 벽을 두고 생각했어요. 결국 이 영화는 제 고백인 셈이죠.” 그는 영화를 보면 누구나 “돼지를 고기가 아니라 생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어떤 동물이든지 적어도 고통받지 않을 권리는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독립영화는 만드는 과정도 어렵지만 관객들에게 보이는 과정이 정말 힘들어요. 땅과 환경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유기농 먹을거리를 찾아 사는 것처럼, 우리 영화도 극장에 와서 봐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한살림 조합원들만 다 와서 봐도 대박이에요.” 전체 관람가라 아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달라고. 참고로 먼저 영화를 본 내 주관적 평가를 말하자면 재미와 감동이어우러진 별점 다섯 개!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포스터. 포스터에 나온 귀여운 아이가 황윤 감독의 아들 도영이다. 전체 관람가라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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