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특집]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잠에 대한 보고 3 - 직장여성 ]

나는 곰처럼 겨울잠 자고 싶다

글 초롱이

아침 6시 20분. 알람시계가 정적을 찢으며 요란하게 울린다. 실신한 것처럼 잠에 빠져있던 나는 일상으로 끌려나온다. 겨우 몸을 일으키지만 눈은 잘 떠지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와 객지에서 대학을 마친 뒤 줄곧 직장에 출근하고 있으니 6, 7년 이상 언제나 같은 시간에 잠을 깨어 습관이 되었을 법도 한데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힘겹다. 특히 겨울로 접어들면서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더욱 더 힘겹다. 몇 해 전 ‘아침형 인간’ 붐이 일어나고 언론에 앞 다퉈 잠 안자고 성공한 사람들을 조명할 때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기서 잠을 더 줄이라고?’ 지금도 이렇게 고달픈데 도대체 얼마나 더 입에 단내 나게 뛰어다니란 말인가 싶었다.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서 인생을 리모델링 해보라며 부추기지만 대개의 직장인들은 지금 이대로도 나처럼 늘 잠이 부족할 것이다. 잠을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마음먹기에 달린 일도 아닐 것이다. 마음대로 잠잘 수 있는 권리. 그것은 결국 제 시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한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허공에 대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내 고단한 잠자리가 있는 자취방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직장 근처에 집을 얻으면 이동거리도 짧고 여유시간도 많이 생긴다는 것을 누가 몰라서 도시의 외곽에 나가 방을 구한단 말인가. 언제나 살고 싶은 방은 가진 돈에 비해 보증금과 월세가 비쌌다. 조금 더 멀리 나가면 그나마 좀 더 나은 방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잠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거주지는 완강한 원심력에 의해 외곽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출근 시간에 안양시내버스를 타고 평촌에 있는 범계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역까지 정신없이 내달려도 보통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퇴근시간까지 합치면 하루에 3시간을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출근시간의 지하철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에도 사람들이 뿜어내는 더운 숨을 정화하기 위해 가끔 에어컨을 튼다. 통조림처럼 쟁여져 선 채로 모자란 잠을 벌충하기 위해 나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졸다가 무릎이 툭 꺾이는 순간이 있다. 그 때 곁에 선 이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면서도 빈 좌석을 차지하려고 틈틈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선 채 조금 깊이 졸 것인가 기필코 자리를 잡아서 숙면을 취하며 갈 것인가 이런 갈등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또 다른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런 순간에 깜빡 깜빡 빠져드는 토막잠이 그래도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어쩌면 하루 중 가장 질 높은 잠을 향유하는 게 이 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도시 직장인 말할 수 없이 예민하다


업무 특성상 야근을 뻔질나게 한다. 한 달에 절반은 밤 10시를 넘겨 퇴근하게 된다. 담당하고 있는 매체의 마감이 임박하면 새벽에 퇴근하는 일도 잦다. 주요한 기사나 큰 제목 글자에서 오탈자를 잡아내지 못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대놓고 추궁하는 사람은 없지만 예민하고 소심한 나는 가슴을 치며 자책을 한다. 이 때문에 눈에 핏발을 세우고 교정지를 뚫어지게 보게 된다. 오탈자에 대한 염려는 거의 강박증에 가깝다. 이런 스트레스가 신체의 바이오리듬을 무너뜨린다. 갈수록 체력의 한계도 느낀다. 스트레스는 때로 폭식이나 자극적인 카페인 음료를 끝없이 마시며 푼다. 마감이 끝나고 정작 일찍 잠 들 수 있는 날이 와도 체내에 축적된 카페인은 집요하게 잠을 방해한다.


이런 생활이 되풀이 되다보니 마음 편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취미 생활에 쓸 수 있는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도 없다. 틈만 나면 모자란 잠을 벌충해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을 만나는 일에 게을러졌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에게 ‘피곤해, 졸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정나미가 떨어진다. 오래 사귄 벗들을 만나 정갈한 이야기만 나눌 수 있는 그런 삶.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나의 얄팍한 됨됨이일까 아니면 내 몸과 마음을 통째로 멱살 쥐고 흔드는 생활의 무게일까.


늘 잠이 부족하다보니 언제나 머리가 띵하고 머리에 통증이 있다. 허리도 아프고 손발이 저릿저릿한 순간이 많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늘 인공눈물을 챙겨야 한다. 두피와 피부 트러블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성 위염 때문에 밥 먹는 일이 개운치 않다. 그런데도 체중은 늘어 있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발 뻗고 잔다는 말이 내겐 참 낯설게 여겨진다. 그렇게 깊이 잠 들어본 적이 언제였나싶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일을 하다 집에 돌아오면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운데 잠은 쉬 들지 못한다. 억지로 눈을 감고 누워도 한참을 뒤척이다가 선잠이 든다. 그나마 잠이 들면 다행이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잠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새벽녘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지만 자취방이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새벽에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 소음 때문에 다시 잠이 깬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타이어가 노면에 마찰되는 소리, 압축공기로 여닫히는 문에서 나는 소음, 그리고 다시 출발하면서 액셀러레이터 밟고 가속하는 소리까지 나는 잠결에 고스란히 듣고 있다. 여기에 혼자 사는 여성들을 노린 흉악범들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라도 한 날에는 금방이라도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문 밖에서 나는 작은 소음에도 온 신경이 집중된다. 편안한 잠은 이런 것들을 다 극복해야 가능할 텐데 내게 좀처럼 그런 순간이 올 것 같지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잠 못드는 생활에 나이를 잊은 여드름까지


부족한 잠이 가장 민감하게 반영되는 곳은 피부다. 대개의 여성들이 얼마나 피부에 예민한지 여성들은 알 것이다. 내가 대개의 여자들보다 피부에 유난스레 집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도 없던 여드름이 얼굴과 온몸에 번져가는 것을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짜증이 피어난다. 푸석푸석한 얼굴을 보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게 된다. 색조 화장을 해 생기 있게 보이게 하고 여드름을 진정시키는 연고제를 바른다. 그렇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두피 가려움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 모두가 부족한 잠 때문일 것이다. 근원적인 처방 없이 대증처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피로를 풀고 신선한 먹을거리와 비타민 섭취를 충분히 하라는 말은 누구든 쉽게 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질병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스트레스의 핵심에 부족한 잠이 있다고 흔들림 없이 믿는다.

쉴 수 있는 주말이 다가오면 나는 열일 제쳐두고 잠잘 계획부터 세운다. 모자란 잠을 벌충하기 위해 휴일의 절반쯤 할애한다. 그런데 배고플 때 밥 먹는 것처럼 잠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만큼 만족스럽게 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잠드는 순간을 제때 맞추지 못하면 20시간 누워있어도 몸은 무겁고 마음도 개운치 않다. 얼마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낸 보고서에서, 철야로 일하는 대형할인점, 편의점 등에서 밤샘 노동 하는 여성들이 ‘빛 공해’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야간에 강렬한 인공조명에 노출 되면 멜라토닌 생성이 억제되고 이 때문에 유방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생활비 벌려고 밤샘 노동 전선에 내몰리는 것도 억울한데 유방암 발병 위험에 노출돼 목숨까지 위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모 기업의 연구소에 근무하는 친구가 “나도 곰처럼 겨울잠을 자고 싶다.”고 해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연구원인 그 친구도 밤샘이 잦고, 긴장 속에 종종걸음을 치다보니 생활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겨울 한 철만이라도 곰처럼 굴속에 틀어박혀 죽은 듯이 잘 수 있다면. 친구와 나는 동병상련을 느끼며 잠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언젠가부터 잠 못 드는 내 마음이 가뭄에 타들어가는 논밭처럼 연상될 때가 많다. 그 때문인지 나는 늘 비를 기다린다. 비라도 퍼붓는 날이면 빗소리가 도로의 차량소음이며 옆집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소음들을 모두 삼켜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쾌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 편안하게 잠이 들곤 한다.
편안한 잠을 방해하는 것들은 어쩌면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과 조바심. 지금 여기가 아니라 어딘가에 도달해야만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랑의 마음. 이런 것들을 짊어진 채로 평화로운 잠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전철에 선 채로 꾸벅꾸벅 조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쓴 초롱이 님은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녹색평론》을 읽고 삶의 지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사는 생태주의자를 꿈꾸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일상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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