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특집]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잠에 대한 보고 2 - 학교 ]

에이~ 어떻게 새벽 1시에 잠을 자요?

글 이경민

잠과의 전쟁
어느 고3 학생

 

1. 조회시간

가을이 왔다고
담임선생님이 창가를 내다보며
미소지었다
아이들의 눈꺼풀에는
아침잠이 아직도 덕지덕지한데
담임선생님이 몇 마디 더 해도
아이들은 꿈벅꿈벅
송아지같이 앉았다
넓은 교실
담임선생님 혼자 인간같이 서 있다

 

2. 수학시간이 끝나고

난사된 총알을 맞은 듯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퍽퍽 쓰러진다
더러는 팔을 베고
누구는 쿠션을 끌어안고
또 누군가는 정석을 베개 삼아
모두 잠든 고요한 교실
살아남은 자들끼리
조용히 미소를 주고 받는데
그 속에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같이
눅눅히 잠이 배었다

 

3. 국어시간

김수영을 배운다
바람이 불고……
풀이 눕고……
‘풀이 눕는다’ 한 줄 읽을 때마다
풀 포기같이 누워가는 아이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를 읽어도
아무도 일어나지 못한다

 

- ≪문학시간에 시읽기 2》30쪽 -

 

 

오늘도 아이들은 잠과의 전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조회를 할 때 헐레벌떡 달려오는 아이들은 날마다 있다. 그 애들은 대부분 젖은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아침도 먹지 못한 채로 뛰어온다.


7시 30분까지 등교할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8시 10분까지 등교하는 요즘도 아침밥을 못 먹고 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은 잠과 싸운다. 오랜 진통 끝에 강제 0교시가 사라졌지만, 아이들은 줄기차게 잠을 잔다. 아이들이 잠들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도록 나는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모둠 토의 수업, 찬반 토론 수업, 시청각 수업, 발표 수업, 청문회 수업, 연극 수업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업 방식을 동원했고 한 시간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정성을 쏟았다. 아이들이 제출한 학습지나 토의 결과물에 답글을 달아주는 식의 후속 지도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공들여 수업을 준비하니 아이들의 참여율이 훨씬 높아졌고 나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귀차니즘’ 증상을 보이며 책상을 향해 쓰러졌다. 이러한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아이들이 특정 수업 시간에 에너지를 쏟고 나면 그 다음 시간에는 엎어져 자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아이들은 하루 수업 일곱 시간 중 두세 시간은 반드시 잠을 잤다.

 

많은 교사들이 수업 전에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느라 수업에 쓸 에너지를 소모한다. 아이들은 교과서와 학습지 꺼내는 것조차 귀찮아하고 잠을 깨우는 교사에게 노골적으로 짜증을 부리고 욕설을 내뱉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시험 시간에 자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감독 교사가 깨우면 시험지도 보지 않고 답안지를 작성한 뒤 다시 엎드린다. 그러다보니 “자는 애들 깨우다보면 수업을 할 수가 없잖아. 깨워봤자 수업 방해나 하니 차라리 자는 게 고맙더라구. 안 자는 애들이라도 데리고 수업해야지.” 하며 자포자기한 교사들도 많다. 아이들의 잠 문제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교사들에게도 참 고통스러운 부분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아이들의 잠을 빼앗는 주범은 학원순례


다른 지역도 큰 차이는 없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특목고에 대한 집착이 무척 심하다. 특목고 합격생은 한 학교당 열 명을 넘지 않는데도, 학급당 10~20명 가량이 특목고를 목표로 학원에 다닌다. 반에서 10등 안팎만 되어도 학원에서는 특목고 입시반을 권한다고 한다. 아이에게 가능성이 있다니 부모는 기대에 차서 비싼 학원비를 지불하고, 아이 역시 특목고반에 들어갔다는 자부심으로 밤늦게 학원에 남아있게 된다.


그래서 이 동네엔 늦은 밤에도 교복 입은 아이들로 왁자지껄하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은 보통 10층 정도 되는 학원 건물로, ‘특목고 197명 합격’이란 커다란 글씨 아래 합격자 이름이 깨알같이 적인 대형 플래카드가 건물 앞면을 뒤덮고 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나와 편의점과 24시간 분식집에 들어간다. 주로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고등학생들은 어디에? 아마 아직 환하게 불이 켜진 학원 건물에 남아 있을 것이다. 매일 밤 12시 넘어까지 학원에 있다면, 학교 자습과 학원 수업이 끝나고 두세 시까지 독서실에 앉아있다면, 그 다음날 아이들이 교실에서 쓰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년 5월, 시험 직후에는 교과서 수업이 어렵기에 영상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EBS 지식채널e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MBC 다큐멘터리 <15살, 꿈꾸고 있는가-꼴찌라도 괜찮아>를 보고 소감을 쓰는 수업이었다. 새벽 두 시까지 학원에 다니는 우리나라 중학생과, 쉬는 시간엔 교실 문을 잠그기 때문에 공부하고 싶어도 모두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하는 핀란드 중학생의 생활이 대비 교차되는 동영상. 학원과 문제집의 늪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특목고 입시에 실패하고 너무 이른 나이에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통해 말해주고 싶었다. 학원에 안 다녀도 괜찮아, 공부를 좀 못해도 괜찮아, 그보다는 건강하게 자기 삶을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단다, 라고.

 

다행히 많은 아이들이 영상을 잘 봐 주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아이들이 나를 슬프게 했다. 요리학원 다니는 준효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고, 태권도장 다니는 진화는 중간부터 계속 자고, 음악 하는 태욱이는 자다 일어나 후반부만 보고, 시험 전엔 나름 열심이던 지수는 시험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졸았다. 이런 동영상을 보면서도 학원 수학 숙제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웠고 영상을 본 뒤 느낌을 쓰라고 나눠준 종이조차 학습지라며 엎드려버리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성적에 목숨 거는 아이들은 시험에 안 나오는 내용이니 그렇다 해도, 요리나 태권도나 음악을 한다는 아이들은 잘 볼 줄 알았는데 이것마저 귀찮아한다는 것도 안타까웠다. 게다가 열심히 영상을 본 아이들의 소감에는 ‘짜증나지만 현실적으로 학원에 안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으면 핀란드로 이민갈 거다.’ 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패배감과 무력감이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볼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밤잠을 못 자고 여유없이 공부하는데도, 아이들의 성적은 좋아지지 않는다. 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안 올라 불안해하는 아이들은 백발백중 ‘앉아 있느라’ 잠이 부족한 상태다. 나는 무엇보다도 잠자는 시간을 제대로 확보하라고 말한다. 뇌에 장기 기억이 저장되는 건 밤잠 잘 때이고,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가 숙면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아이들은 어이없다는 듯 쓴웃음을 짓는다. “에이, 선생님, 그 시간에 어떻게 자요?” 그렇다. 아이들은 그 시간에 잘 수 없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황금 수면 시간대가 다 지난 2시 무렵에야 겨우 잠자리에 든다. 간혹 1시쯤 잔다는 아이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12시 이전에 자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 당연히 성적이 오를 수 없다.

 

 

새벽2시 전에 자는 아이들이 없다


“늦게 자면 피곤하니까 수업 시간에 졸리고 집중 안 되는 게 당연하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여섯 시간은 자는 게 좋은데, 왜 그렇게 늦게 자니?”
“학원 갔다오면 12시 반쯤 돼요. 배고프니까 뭐 좀 먹고 씻고 나면 1시가 넘고요, 인터넷 잠깐 보면 2시가 넘어가요.”
“학원 다니는 게 도움은 많이 되니? 네 잠을 포기할 만큼 말이야.”
“음…. 사실 잘 모르겠어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럼, 비싼 돈 내고 잠도 못 자고 몸 망쳐가며 왜 다녀? 안 다니면 안 돼?”
“사실, 저도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 적 있는데요, 그러니까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다른 애들은 다 다니는데 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제가 혼자서는 공부 잘 안하니까 엄마가 그냥 다니래요. 학원 안 가면 용돈도 끊겨요.”


잠을 못 자고 피곤하니 아이들은 아침에 눈뜨기가, 학교 수업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다. 아이들의 잠을 빼앗는 주범은 결국 학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잠을 빼앗을 권리를 학원에 쥐어준 이는, 슬프게도 아이들의 부모다. 학원에 다니는 것이 공부를 하는 거라고 믿으면서,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무수히 학원을 전전해온 아이들은 학원을 그만두면 쉬고 싶기도 하고 자기 시간을 관리해 본 적이 없기에 일단 놀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율성을 기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한동안 빈둥대며 TV 보고 인터넷 하는 꼴을 부모들은 봐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맞벌이하는 분들은 아이를 혼자 두기 불안해서 더욱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게 한다. 공부도 공부지만 아이를 감시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악순환을 불러온다. 비싼 학원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밤잠 못 자고 학원에 다니는 부작용은 단지 성적 저하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과자나 라면,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고 집에 가서 또다시 도넛이나 ‘짜파게티’ 등을 먹는다. 조미료와 합성 첨가물이 가득한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은 몸에 좋은 담백한 것을 거부하게 만들고 아이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친다. 급식지도를 하다 보면 아이들은 김치나 나물, 채소는 거의 먹지 않고 고기에만 달려든다. 수면 부족으로 예민하고 피곤한 몸에 저질 탄수화물과 수입 고기를 반복 섭취하니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조금 깊이 생각하는 사고력 문제가 나오면 바로 포기하거나 짜증을 낸다. 마음에 여유가 없기에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화를 내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도 많다.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분노를 참지 못해 친구는 물론이고 교사에게까지 욕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만성 피로 상태로 책상에 앉아있기만 할 뿐 공부에 성취감을 맛보지 못한 아이들, 입시와 경쟁에 찌들어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린 아이들의 신경은 건드리기만 해도 펑 터질 것 같은 폭탄과 다를 바 없다.

 


학원 끊는 일부터 실천해 아이들을 구하자


물론 아이들과 부모만 탓할 수는 없다. 아이들이 잠 못 자고 학원에 다니는 이유도, 부모들이 귀한 자식들을 가혹한 학원 쳇바퀴에 구겨 넣는 이유도, 우리 사회가 특목고와 명문대에 목맬 수밖에 없는 학벌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게 할 것인가. 피로에 지친 아이들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아이들의 정서와 마음이 완전히 피폐해져 서로 물어뜯을 때까지? 더 불행한 일은, 대학 입학 때까지 그 가혹한 쳇바퀴를 견딘다고 해서 행복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루 세 시간 잔다고 모두가 상위 1%에 들 수는 없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교육조차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의 상술에, 부모들의 ‘내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 라는 마음이 이용당하는 셈이다.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수퍼맨이 나타나서 이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 주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강수돌 교수가 항상 이야기한 것처럼 ‘옆집 아줌마를 경계’하는 일, 아이를 돈의 힘으로 성공시키려는 욕망을 버리고 학원을 그만두게 하는 일을 실천하자. 옆집 아이와 성적 비교하기를 멈추는 일, 학원 등록과 성적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아이를 학원이나 학교에 밤까지 옭아매고 애써 안도감을 느끼려 했던 것을 인정하는 일,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고문과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하는 일, 그 고문은 아이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병든 사회를 만든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이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백 명의 난장이가 뜻을 모으고, 천 명의 난장이가 힘을 합쳐서 파장이 점점 커진다면, 세상도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갈 것이다. 반드시.   


*이 글을 읽고 마음이 갑갑해진 부모님들께 KBS 시사기획 <쌈> ‘우등생의 조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2009년 11월 10일 방송분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글을 쓴 이경민 님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백마고등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숨막히는 학교 현실을 12년째 견디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푹 자고 평온한 얼굴로 행복하게 학교 오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