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호 2009년 겨울 [특집]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야생동물의 잠 ]

고난을 견디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동물의 잠

글·사진 한상훈

사람처럼 동물에게도 잠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억지로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스스로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인간은 평생의 1/3가량을 자면서 보낸다. 너무 많다 싶겠지만, 그래서 잠을 아껴 더 많은 노력을 하자는 사람들도 있지만 잠자는 시간 1/3이 나머지 2/3를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당시의 영국 수상 처칠은 매일 2시간씩만 수면을 취하면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80세까지 장수했다. 그래서 그 초인적인 건강을 연구하기 위해 ‘처칠의 유전자’를 사망 후에 영구 보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도 대학원시절 학위논문 때문에 3개월 이상 일주일에 이삼일은 꼬박 새고  나머지 날들도 6시간씩만 잠을 자는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개인마다 신체 조건이 다를 수 있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종종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적정한 수면시간은 얼마일까? 하루살이는 과연 잘까? 2~3시간씩 잠을 자는 것과 8시간 잠을 자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잠에 대해 한번쯤 이런 의문들을 품어보았을 것이다.

 

한 평생 거의 잠만 자는 나무늘보


야생동물들은 잠을 얼마나 잘까? 답은 간단하지 않다. 동물들은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 먹고 먹히는 생존의 최전선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들처럼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집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야생동물이건 사람이건 비활동시간대에 잠을 자는 점은 같다. 즉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주로 활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을 잠을 자며 보내고 일부 동물들은 생존이 어려운 계절에는 겨울잠이나 여름잠 등 장기간의 연속적인 수면을 취하기도 한다.

 

많이 알려진 동물 가운데 남미의 정글에 사는 포유동물인 나무늘보는 온종일 거의 움직이지 않고 나무를 붙잡고 매달려 생활한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거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시간 동안 관찰해도 겨우 4㎝만 움직였다는 보고가 있고 하루 20시간 이상 잠을 잔다는 연구자료도 있다. 평균 25년 정도 사는 그들의 수명을 감안하면 20년 이상 잠을 자는 셈이다. 행동이 느리고 노출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나무늘보가 자연의 혹독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앞으로도 이렇게 느린 삶이 지속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겨울잠 자는 동물들은 오래산다?


곰이나 박쥐는 겨울잠을 잔다. 반대로 아프리카와 같은 열대지역에서는 혹독한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름잠을 자는 동물들도 있다. 두꺼비는 2월경 번식을 위해 깨어나 약 15일간 활동하고 다시 2개월 동안 ‘봄잠’을 자고 5월경에 깨어나 활동한다. 긴 잠을 자는 시기와 동물의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생존을 위해 장기간 잠을 자는 점은 같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있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도 저마다 조금씩 잠자는 유형은 다르다. 곰과 박쥐, 오소리는 겨울잠을 자는 동안 전혀 먹이를 먹지 않고 약간의 수분만을 취하지만 다람쥐는 먹이를 저장해놓고 틈틈이 깨어나 먹이를 먹은 뒤 다시 잠을 잔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동물들의 신체 생리현상은 크게 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온이 떨어져 30도 가까이 내려가고 심박수도 1분에 8내지 10회로 떨어진다.

 

잠이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인지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힌 연구결과는 없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반증하는 사례들은 많다. 박쥐가 대표적인 예다. 박쥐는 스스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잠자리로부터 먹이활동을 하는 장소까지 매일 수 km에서 수십 km를 날아서 이동한다. 장거리를 이동하고 스스로 날아다니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많은 먹이를 먹어야만 한다. 몸무게가 겨우 6~8g에 불과한 집박쥐가 하룻밤에 천 마리 이상의 모기를 잡아먹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무게의 쥐나 다른 포유동물들이 불과 1~2년 정도 사는 것에 비해 박쥐는 거의 10배 이상 오래 산다. 박쥐가 장수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많은 과학자들은 박쥐가 긴 동면을 하면서 그 기간 동안 마치 냉동인간처럼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려 거의 신진대사활동을 정지시킨 상태로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능조절을 하는 유전자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 박쥐의 수면 조절 유전자가 밝혀진다면 사람도 박쥐와 같이 스스로의 신체기능을 조절하면서 꼭 활동하지 않아도 될 때나 외면하고 싶은 고통의 순간들을 동면으로 나면 지금보다 2배 이상 더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야생동물들은 주행성과 야행성 또는 두더지처럼 1회 8시간씩 하루 3회로 나눠 활동하는 등 활동주기에 따라 잠을 자는 시간대가 다르고 수면시간도 차이가 있다. 수명은 세포를 재생시키는 등 건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잠을 자는 동안 거의 모든 신체 조직이 휴식을 한다. 규칙적인 수면을 취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얼굴빛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을 봐도 잠의 생리기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동물도 사람들처럼 꿈을 꾼다. 잠자는 동물을 관찰하면 입맛을 다시거나, 소리를 내곤 한다. 동물들은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꿀까?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동물이나 사람에게 꿈은 여전히 신비한 점이 많은 미지의 영역이다. 만일 사람도 인생의 겨울을 잠으로 건너 뛸 수 있다면 그런 꿈은 헛된 것일까.  

 

 

글을 쓴 한상훈 님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복원팀장을 지냈고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척추동물연구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박쥐의 계통진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양서류 번식시기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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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을 자는 반달가슴곰. 3개월 이상 긴 겨울잠 내내 소량의 수분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오랫동안 항문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다시 배설하기 위해서 큰 고통을 겪는다. 배설을 돕기 위하여 독성의 풀을 먹기도 하며, 항문이 찢어져 하혈하는 경우도 흔하다.

 


30년 이상 사는 관박쥐. 잠과 수명과의 관계를 밝혀내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2월 하순 번식을 위해 잠깐 깨어난 뒤 다시 긴 잠을 자는 두꺼비. 양서류와 파충류가 오래 사는 이유도 수면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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