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호 2014년 12월호 살림,살림

[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농업이 아니라 농촌과 농민 ]

앞으로 20년 뒤 우리는

글 하승우

친환경농업은 정부도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 되었지만 농업이 아닌 농사나 농촌은 지속가능할까?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되는 순환이 없다면 과연 농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살리는 사람 농부
김성희 지음 / 한살림 펴냄 / 2014년

 

 

마을공화국의 꿈, 홍동마을 이야기
홍동마을 사람들, 충남발전연구원 지음 / 한티재 펴냄 / 2014년

 

 

요즘 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의 20년 후에 관심이 많다. 지금 생협의 주요 조합원은 1명 이상의 자녀를 둔 30대 이상의 여성·세대이다. 이 세대 구성이 20년 후에도 유지될까? 보건사회연구원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비율은 1985년 6.9%, 2000년 15.5%, 2012년에는 25%를 넘었다. 그리고 20년 뒤인 2033년에는 33.6%로 예상된다. 현재 생협의 물품은 이런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열정을 강요하는 불안정노동과 저임금·실업에 시달리는 지금의 20대가 20년 뒤에 생협의 주요 조합원이 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리는 생산자를 마주보고 있나?

 

생산자를 고려하면 그림이 더 암울해진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농가인구 중 65살 이상의 고령 농가인구비중은 1980년 6.8%에서 2000년 21.7%, 2013년 37.3%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20~49살 농가인구 비중은 1980년 34.2%에서 2000년 32.3%, 2013년 21.1%로 감소하고 있다. 이미 1999년에 초고령화사회(65살 이상이 총인구의 20% 이상인 곳)에 진입한 한국 농촌에서 누가 20년 뒤에 농사를 지을까? 심지어 그것도 유기농사를. ‘돌직구’를 날리자면, 사정이 이런데도 농촌을 살리자는 모토를 내건 생협은 농업에만 관심을 두지 농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지금 이대로’라는 기대만 품고 활동하는 건 아닐까.

 

김성희가 쓰고 류관희·장성백이 찍은 《살리는 사람 농부》(2014)는 “대부분 70~80대 고령인” 한살림 1세대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온갖 탄압을 받고 유기농으로 많은 손해를 입으면서도 자신과 소비자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흔치 않은 여성생산자, 충북 영동 서순악 씨의 귀한 이야기도 담겨 있는, 한살림생산자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하지만 “지역이나, 토양, 작물마다 성질이 다른데, 하다못해 같은 밭에서도 위와 아래가 달라”지는데, 마치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농법이나 이론을 거부하던 생산자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글쓴이의 말처럼 “책이 묶이기도 전에, 우렁이농법을 창안해 논에 뿌려지던 제초제를 획기적으로 줄인 최재명 씨와 제주도 큰수풀공동체의 임선준 씨가 세상을 떠났다.” 책으로 길이길이 이야기를 남길 수는 있지만 직접 대면할 기회는 사라졌다.

 

친환경농업은 정부도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 되었지만 농업이 아닌 농사나 농촌은 지속가능할까? “더러 귀농하는 젊은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생계 때문에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원예나 과수·축산 농사에 몰리고 있다”는 이야기, “원거리 수송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부담스럽고, 수확철에는 한겨울 노지에서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일당 7만 원에도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점”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기감을 느끼는 건 나뿐일까?

 

그리고 한살림생산자의 역사는 가톨릭농민회의 역사와 겹친다. 나는 못살아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려는 치열한 싸움이 생산자들의 삶에서 묻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치열한 삶을 살고 있나? 소비자조합원들은 그 싸움에 귀를 기울이고 있나? 서로가 그렇게 만나고 있다면 한중 FTA가 저리 쉽게 타결될 수 있었을까?

 

생산자들이 사라지면 누가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 살까? 아마도 20년 뒤에는 생명과 평화의 기준이 유기농보다 대농과 소농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하는 양이나 물류비용을 맞추려면 대농이 되어야 하고, 대농이 농사를 지으려면 기계나 이주노동자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런 농사에서 생명과 평화를 논할 수 있을까?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되는 순환이 없다면 과연 농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산자들의 담담한 이야기로 매서운 회초리를 내리칠 수도 있을 터인데, 담담한 서술에서 의문과 서글픔만 느끼게 된다.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만들까?

 

그런 점에서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마을공화국의 꿈, 홍동마을 이야기》(2014)는 풀무학교로 알려진 홍동면을 다룬다. 순서 없이 배치된 “농부는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제조업자가 아니”라 “예술가에 가까운 것 같다”는 풀무학교 전공부 창업생들의 생활글들은 젊은 농촌의 고민을 대변한다. “10년 동안 약 이십여 명의 졸업생들이 지역에 정착”하였다고 하니 큰 성과이다. 그리고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흙을 만지면서 땀을 흘리고, 어울려 일하는 법을 몸에 익히는 것, 일을 하며 살아가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꿈이자라는뜰’ 이야기는 농촌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만든다. 또한 “우리끼리 잘 살자”가 아니고 “동네 중심으로 들어가자”는 귀농·귀촌인의 이야기도 귀하다.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받치는 농민들이 이런 토양에서 나타날(아직 오지 않았을 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기운을 바탕으로 홍동마을은 농부의 관점과 철학으로 살아가는 교육, 구역예배를 통한 녹색 마을정치와 착한 정치, 마을마실방 ‘뜰’, 지역화폐, 동네 의사 등을 시도하고 있다. 내외부의 여러 조건들과 사람의 활동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다양한 기운이 넘실대니 홍동마을을 주목할 만하다. 물론 홍동면은 이상향이 아니다. 최근 풀무생협과 관련된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고 그 내부의 갈등도 귀에 들린다.

 

이 책에서도 쓴소리를 찾을 수 있다. 공부하지 말라며 보충수업에 빠지는 아이들은 주로 집에서도 충분히 지낼 수 있는 아이들이다보니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합의는 지역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여성은 발언권이 없고 선거권도 없”는 “홍동에서 마을총회를 여는 방식은 굉장히 비민주적”이라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정말,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내하는 품성”이 홍성 내부에서도 필요해 보이지만 그곳은 그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을 듯하다.
20년은 길지만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가 그 시간을 결정한다.

 

↘ 하승우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까칠한 로맨티스트’입니다. 오랜 수도권 생활을 접고 충북 옥천으로 가 자치와 자급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