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호 2014년 12월호 살림,살림

[ 이야기가 있는 밥상-팥찰밥·팥샐러드·서여향병·김치잡채 ]

양기가 생기는 날, 동지에 벌이는 잔치

글 고은정 \ 사진 류관희

동지가 다가온다. 동지는 겨울에 이르렀다는 말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동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가 매일 1분씩 길어진다. 그래서 조상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동지를 설날, 임금의 생일과 함께 3대 명절로 꼽았다. “동지는 양기가 생기는 날이고, 군자가 즐거워하는 때이니, 임금과 신하가 함께 하는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태종실록》에 남아 있다. 비슷한 기록이 《세종실록》에서도 보인다.

 


동짓날 궁에서는 우유와 우유죽(타락죽)을 공신에게 내리고 ‘전약’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추위에 몸을 보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약으로 먹었다. 그때만 해도 우유와 전약의 재료인 소가죽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서민들은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먹었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리고 방이나 곳간, 장독대, 헛간에도 놓아두고 대문이나 벽에 뿌렸다.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쫓고 잔병을 없애며 액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렇듯 팥죽은 동지에 끓여 먹기 시작해서인지 아예 동지팥죽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드는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밥이나 팥시루떡을 해 먹었는데 어린아이들에게 액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음력으로 10월 말에 동지가 들었으니 애동지에 해당한다. 가을무를 듬뿍 썰어 넣고 팥무시루떡 쪄서 먹으면 내년에 나에게 올 준비를 하고 있던 액운이 다 날아가 버릴 것이다. 시루떡을 찌기 번거로울 땐 팥밥만으로도 훌륭하다. 과학적으로 따지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뭐 어떤가. 매일 해 먹는 밥이니, 동지라 이름 붙은 날에 조금만 마음을 내서 팥밥을 해 먹고 귀신과 액운을 쫓았다고 생각하면 더 즐거운 새해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니 좋기만 하다.
동지에 해먹는 음식의 주재료는 액운을 쫓기 위한 재료인 팥이다. 혹시 죽이나 밥, 떡 말고 다른 것을 먹고 싶다면 팥을 이용한 샐러드가 어떠냐고 묻고 싶다. 샐러드지만 죽이나 떡처럼 간단히 한 끼 식사로도 거뜬하다.

 

 

지리산 산내면 '맛있는 부엌'에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잔칫상에는 김치잡채와 서여향병 그리고 팥찰밥과 팥샐러드를 올렸다. 올해는 애동지라 팥죽을 하지는 않았다.



서여향병의 주재료 마

우리는 부모에게 받은 선천의 기에 음식으로 얻는 후천의 기를 더해 건강을 유지한다. 선천의 기는 몸을 오장육부의 위치에 따라 상중하로 나눌 때 가장 아래쪽에 있는 신에서 출발한다. 모든 식물의 뿌리가 땅 아래에 자리하고 있음과 다르지 않다. 땅의 기운을 흠뻑 먹고 건강하게 자란 식물의 뿌리가 사람의 건강에도 긴밀하게 연결되기 마련이다.
식물의 뿌리는 가을에 기운이 가장 왕성한데,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추운 겨울에 대비해 영양분과 수분을 땅속뿌리로 이동시키고 지상부는 시들기 때문이다. 우리 몸도 가을에는 안으로 수렴하면서 건조해진다. 특히 촉촉한 것을 좋아하는 폐가 건조해지면 입이 마르고 마른기침이 나오는 등 호흡기 질환이나 변비 같은 증세가 생기고, 피부도 건조해져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노화가 일어난다.
가을에는 원기를 보하는 인삼과 무, 우엉, 토란, 마, 당근, 연근 등 다양한 뿌리들이 식탁에 오른다. 그중 ‘마’는 선천지기의 근간인 신과 후천지기를 위해 일하는 소화기관인 비장은 물론이고 우리 몸의 기를 주관하는 폐에 두루 좋다. 마는 산에서 나는 좋은 약이라는 뜻의 산약, 산에서 나는 토란이라는 뜻의 산우, 맛이나 모양이 감자와 비슷하다 하여 서여 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맛은 달고, 성질은 차지도 덥지도 않고 평화로우므로 누구나 언제든 먹어도 좋은 약재이자 음식의 재료이다. 보통 3월과 9월에 캐기 시작하는데 비장의 기능이 허해서 오는 권태감과 무력감, 식욕부진, 설사 등의 증상 개선에 좋다. 폐의 기운이 허약하고 건조해서 오는 해수와 천식에 좋고 신장이 허해서 생기는 요통이나 무릎 시린 증상, 정액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증상, 조루증은 물론 음이 허해서 생기는 소갈증 등에 먹는다. 마를 생으로 먹으면 신에, 익혀서 먹으면 비에 조금 더 치우쳐 보하게 된다고 하며 비위가 약한 사람은 생으로 먹지 말고 익혀서 먹는 것이 좋겠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30대 왕인 무왕의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서동이라 불렸던 무왕이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 마를 팔아 생계를 꾸렸기 때문이라는 설화다. 무왕이 마를 많이 먹어 몸이 남성미를 풍기며 건강했을 것이므로 선화공주의 마음을 살 수 있었으리라는 흥미로운 추측이다.
백제시대에는 마가 주식에 속했고 서민들은 산에서 일하다가 허기가 지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 마를 캐 먹었다. 그러나 고조리서에 나오는 서여향병이나 죽 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마를 이용한 요리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도 마를 즐겨 먹지 않았다. 워낙 끈적이는데다 강판에 갈아서 나오면 미끈거리는 식감이 좋지 않아서다. 몸에 좋은 마를 많이 먹으려면 다양한 조리법을 생각해 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마와 감자는 같은 과이고 익힌 후의 식감이 비슷하므로 감자가 주재료인 음식에다 감자를 빼고 마를 대입시키면 제법 그럴 듯한 음식이 나온다. 연말 모임에, 다소 손이 가기는 하지만 맛도 고급스럽고 몸에도 좋은 서여향병을 권하고 싶다.



버무려져 하나 되는 잡채와 궁중떡볶이

잡채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고기와 함께 여러 가지 채소들을 볶아서 만든 음식이다. 지금은 처음 유래와 달리 마치 당면이 주재료처럼 보인다. 한국인의 잔칫상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의 으뜸인데 예전에는 임금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 한다.
《광해군일기》에 의하면 이충은 채소에다 다른 맛을 가미했는데 그 맛이 희한하여 임금은 식사 때마다 이충이 만들어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고 한다. 정조 때 문장가였던 서명응의 《보만재총서》에 기록된 잡채는 오이, 숙주, 무, 도라지 등 각종 나물을 익혀서 비빈다고 했고, 17세기 이명준은 《잠와유고》에서 식초를 넣고 버무린다고 했다. 구한말의 김기수가 쓴 《일동기유》에는 채소를 잘게 썰어 생선과 고기와 콩을 섞어 먹었다고 한다.
잡채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모했지만 여러 채소를 섞어 먹는 원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대규모의 당면공장이 세워지면서 당면이 듬뿍 들어간 잡채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에 이르러 잡채에 값싼 당면이 넉넉히 들어가 배고픈 서민들의 배를 불리는 축제 음식으로 자리바꿈한 것으로 보인다.
함께 버무려지고 어우러지는 음식에서 궁중떡볶이라 부르는 간장떡볶이를 빼놓을 수 없다. 고추장떡볶이와는 달리 궁중떡볶이는 이름만 다른 잡채라고도 할 수 있다. 채소와 고기, 당면 대신 떡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버무려지고 어우러진 음식이다. 개성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각자의 개성은 잃지 않되 하나일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내는 여럿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얹는 음식이 나에게는 바로 잡채이고 궁중떡볶이다.




팥 찰 밥

 







재 료
멥쌀 2컵, 찹쌀 2컵, 팥 1컵, 밥물 4컵


만 드 는 법
① 팥을 깨끗하게 씻어 우르르 한 번 끓여 물을 버린다.
② 한 번 끓였던 팥에 물 7컵을 넣고 20분간 삶는다.
③ 삶은 팥은 건지고 물은 밥물로 쓴다.
④ 멥쌀과 찹쌀을 미리 불리지 않아도 된다. 씻어 압력솥에 넣고 삶은 팥을 넣는다.
⑤ 팥 삶은 물을 밥물로 넣고 밥을 한다.



팥 샐 러 드






재 료
팥 50g, 율무 50g, 두부 1/2모, 배춧속 약간, 사과 1개, 배 1/2개, 단감 1개, 소금
소스 : 현미유 1/4컵, 현미식초 3/4컵, 조청 3큰술, 간장 1큰술, 다진 양파 50g, 후추 약간


만 드 는 법
① 팥과 율무를 씻어 각각 삶아 건져 냄비에 다시 넣고 푹 무르게 삶아 식힌다.
② 두부는 먹기 좋은 크기로 손으로 떼어 내 소금을 살짝 뿌려 물기를 뺀다.
③ 과일을 먹기 좋게 썰고 배추는 한입 크기로 뜯는다.
④ 분량의 재료로 소스를 만든다.
⑤ 삶아 식힌 팥과 율무에 소스를 넣고 미리 버무린다.
⑥ 샐러드용 그릇에 준비해 둔 채소를 담는다. 채소 위에 준비해 둔 두부와 팥,
율무를 보기 좋게 담고 소스를 함께 낸다.


서 여 향 병

 







재 료
마 500g, 찹쌀가루 200g, 잣가루 100g, 식용유, 꿀 적당량


만 드 는 법
① 마는 지름이 5cm 정도로 일정하고 곧은 것을 준비하여 껍질을 벗기고
0.5cm 두께로 썰어 놓는다.
② 김이 오른 찜통에 마를 넣고 5분간 찐다.
③ 찐 마를 식혀 꿀에 약 30분간 재워 둔다.
④ 잣을 한지에 놓고 종이를 바꿔 가며 곱게 다져 가루를 만든다.
⑤ 꿀에 재운 마를 찹쌀가루에 굴려 골고루 묻힌다.
⑥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현미유를 두르고 4의 마를 뒤집어 가며 앞뒤로
노릇하게 부친다.
⑦ 부친 마에 잣가루를 묻혀 그릇에 담아낸다.



김 치 잡 채

 







재 료
소고기 200g, 표고버섯 6개, 목이버섯 10개, 느타리버섯 50g, 시금치 100g, 양파 1개, 당근 1/2개, 당면 150g, 익은 김치 200g, 현미유, 간장, 들기름, 통깨
소고기 양념 :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파 1큰술,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후추 약간
버섯 양념 : 간장 1/2큰술, 설탕 1큰술, 들기름 약간
당면 양념 : 간장 3큰술, 설탕 2큰술, 참기름 2큰술


만 드 는 법
① 당면을 따뜻한 물에 담가 둔다.
② 소고기를 양념에 재운다.
③ 표고버섯과 목이버섯을 따뜻한 물에 담가 불린다.
④ 시금치는 다듬어 씻은 후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후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한다.
⑤ 양파과 당근을 손질해 채 썬다.
⑥ 시금치는 들기름과 집간장에 무친다.
⑦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양파와 당근을 소금으로 간하여 볶아 넓은 그릇에서 식힌다.
⑧ 불린 당면을 끓는 물에 넣고 10분 정도 삶는다.
⑨ 소고기를 달군 프라이팬에 바싹 볶아 넓은 그릇에 담아 식힌다.
⑩ 표고버섯, 목이버섯, 느타리버섯을 분량의 양념과 함께 물기 없이 볶아 넓은 그릇에 담아 식힌다.
⑪ 김치의 소를 털고 물에 씻어 꼭 짠 후 가늘게 채 썬다.
⑫ 삶은 당면을 건져 둥근 팬에 넣고 당면 양념에 물기 없이 볶아 한 김 식힌다.
⑬ 모든 재료를 함께 넣고 골고루 버무린 후 모자란 간은 간장과 설탕으로 하고 통깨로 마무리한다.



↘ 고은정 님은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로, 우리 장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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