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호 2014년 12월호 [특집] 특집 - 한중 FTA

[ 우리 집 밥상에 수입 농산물 얼마나 될까 ]

“가격이 싸다 싶으면 다 중국산이여”

글 \ 사진 류혜인

1992년 중국과의 수교가 정상화되면서 처음 한국에 중국 농산물이 들어올 때만 해도 수입 농산물의 자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우루과이라운드와 자유무역협정(FTA)을 거치며 수입 농산물이 우리 밥상 한구석을 야금야금 파고든 지 20여 년. 이제는 이웃집 제사상에 모리타니산 문어와 호주산 쇠고기로 만든 산적, 태국쌀로 만든 한과를 올렸다는 얘기를 들어도 더 이상 웃음이 나지 않는다. 다들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 논밭, 산과 바다에서 길러낸 먹을거리만으로 밥상을 차려내는 게 ‘미션 임파서블’이 돼 버렸다.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되짚어 볼까 싶다. 내가 차린 한 끼 밥상에 수입 농산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하는지 말이다.


“요샌 죄 수입해다 흙도 발라서 판다매?”


우리 집의 오늘 저녁 메뉴는 동태전, 쇠고기뭇국, 시금치나물, 멸치호두볶음, 어묵볶음과 김치. 생협에서 산 동태는 러시아산, 쇠고기는 국내산 한우다. 무 역시 국산. 시금치는 생협 채소류가 일찍 품절되어 동네 전통시장에서 구입. 살 때마다 궁금하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이야기 하나. 유기농 매장에선 한 단에 삼천 원이 넘기도 하는 시금치가 전통시장에선 반값도 안 되는 이유가 뭘까? 그때 옆에서 들리는 한 할머니와 주인아주머니의 이야기 소리.
“우엉 이거 중국산이지?” “아녀요. 흙이 이렇게 묻어 있는데 뭔 중국산이여.” “요샌 죄 수입해다 흙도 발라서 판다던데? 국산으로 눈속임하려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다 싶으면 다 중국산이여.” “아, 싸게 팔아도 탈이네.”
다음은 멸치볶음 재료를 구할 차례. 멸치야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사둔 완도 멸치 한 박스가 냉동실에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때마침 떨어진 호두는 동네슈퍼에서 샀다. 그런데 이 호두, 출생지가 예사롭지 않다. 이름도 낯선 키르기스스탄. ‘-스탄’이란 말로 끝나는 걸 보니 중앙아시아 어디쯤 있는 나라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어묵. 생협 어묵과 양이 모자랄 듯하여 슈퍼에서 하나 더 사온 대기업표 어묵을 나란히 놓고 보니 제품함량이 흥미롭다. 생협 것은 베트남산 어육 68%에 나머지는 산도조절제를 비롯한 여러 첨가물, 대부분 국내산이다. 그걸 보면서 모든 재료를 국내산으로만 쓰겠다던 생협도 세계화 바람 앞엔 어쩔 수가 없구나 싶어 잠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대기업 어묵의 함량에는 이름도 성도 없다. 그저 수입산 어육! 이러면 나 같은 게으른 의심병환자들은 의심을 시작한다. ‘원산지를 못 밝히는 이유가 뭘까? 나라 이름 쓰는 게 그렇게 어렵나? 못 밝힐 이유가 있어서겠지? 혹시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싼값에 들여온다는 일본산 생선이 내가 태어난 곳은 일본이다 말을 못 하고 그저 수입산으로 이름표를 바꿔 단 건 아닐까?’ 그 어묵을 볶느라 두른 식용유는 100% 수입산 대두로 만들었단다.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수입 농산물


아이는 하루 한 끼를 학교급식으로 해결한다. 우리 아이 학교의 경우, 급식실에서 배포하는 안내문에 러시아산 생선과 필리핀산 열대과일을 제외한 모든 재료가 국내산이라고 써 있다. 생협을 이용할 때도 수입산 재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데, 많은 양을 소화해야 하는 단체급식에서 모든 재료가 국내산이라는 게 요즘 세상에 가능한 일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입만 열면 고기를 찾아대는 아이 때문에 주말 저녁 외식은 대개 고깃집을 찾는다. 쇠고기는 식당마다 약속이나 한 듯 죄다 호주산. 분명히 미국 포함 다른 나라에서도 수입 고기가 들어온다는데 그 많은 쇠고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내 물음에 지인이 답한다. “아마도 햄버거 패티나 고기 형태가 살아있지 않고 원산지 표시가 필요 없는 음식에 고루 쓰이지 않을까?”
돼지고기는 그에 비해 그나마 정직하게 원산지 표기를 하는 듯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아니면 국내가 대부분이던 돼지고기 원산지는 언제부턴가 무척 다양해지고 있는데, 한동안은 독일, 캐나다가 자주 보이더니 요즘은 헝가리, 핀란드, 칠레, 프랑스 등 남반구 북반구 구대륙 신대륙을 가리지 않고 수입국의 면면이 다채롭기만 하다. 분명 누군가는 원산지야 어디든 싼값에 푸짐하게 고기를 먹으니 좋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식재료의 이동 거리가 길수록 점점 우리의 건강과도 멀어져 간다. 오랜 이동을 위해 첨가된 방부제와 보존제, 그리고 음식물이 이동하면서 함께 옮겨지는 다양한 미생물과 각종 균들. 무엇보다 이렇게 전세계에서 값싼 식재료를 들여와 배를 채워야 할 만큼 우리는 많은 음식을 소비해야만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농수축산업을 집어삼키는 ‘글로벌 식탁’


집으로 가는 길, 아이와 마트에 들렀다. 마트 입구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건어물 코너. 쥐포, 주꾸미 등 덩치가 작은 수산물은 언제부턴가 당연히 베트남산이다. 정체불명의 수입산만 아니면 고마울 지경.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흔하게 먹던 통영, 삼천포산 쥐포들은 이제 아주 자취를 감추었나? 쥐치들이 전부 베트남으로 이사 가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 바다에서 나던 생선들은 이제 먹을 방법이 없는 건가?’ 혼자 구시렁대면서 그 옆 생선 코너를 휘 둘러본다. 가격이 제주산 갈치의 3분의 1쯤 되는 세네갈산 갈치가 줄 맞춰 누워 있고, 옆에는 북미에서 날아온 랍스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새우도 있다.
호주산 콩으로 만든 두부와 콩제품 코너를 지나면 과일 코너이다. 사과, 배는 물론이고 각각 칠레산과 페루산이라 적힌 포도 옆에는 동남아 여행 때나 맛보던 두리안, 애플망고 등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맞은 편 생수 코너를 보고 깜짝 놀란다. 맙소사, 북유럽의 빙하를 녹여 담은 생수도 수입되었다니!
지구촌은 하나이며 서로 먹을거리를 나누는 나라끼리는 총부리를 겨누지 않더라는 옛말을 떠올리며 위로돼야 할까? 아니면 온 인류가 서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 감동이라도 해야 하려나? 솔직히 두렵다. 그저 수입산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어떻게 생산되고 이곳까지 왔는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 ‘글로벌 식탁’ 시대가 두렵다. 각 나라의 고유한 식생활이며, 생산성 낮은 나라의 농축수산업을 보호하는 일 따위 다 집어삼켜 버리는 경제 논리도 무섭다.
달콤한 가격으로 유혹하는 ‘묻지마’ 수입산들에 이제는 우리 소비자들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정부와 기업이 책임지지 않는 우리 농촌과 밥상을 위해서 말이다.


↘ 류혜인 님은 자유기고가로 일하며 《비오는 날이 좋아요》, 《비구름, 비켜》 등의 어린이책을 썼습니다. 내가 생활하기 위해 먹고 쓰고 버린 것들이 다른 이의 삶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늘 생각하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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