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호 2014년 9월호 살림,살림

[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 ]

‘장소 없음’ 왜 철학과 정치가 무력한가?

글 박영길

 


투사를 위한 철학: 정치와 철학의 관계
알랭 바디우 지음 | 서용순 옮김 | 오월의봄 펴냄 | 2013년

 


난센여권: 난민을 위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권 한 장
최소연 지음 | 북노마드 펴냄 | 2014년

 

 

나는 몇 년째 사회적으로는 청소노동자이면서 개인적으로는 활동가라는 위치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문제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활동가라는 삶이 익숙해질수록 나와 내 주변의 삶이 더 나아지기보다는 점점 더 무기력해지거나 허탈감이 커져 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삶이 건강하지도 않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나의 활동들에서 어떤 전망들이 드러나지도 않다 보니 이중으로 난감한 상황에 빠진 양상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왜 철학을, 정치를 찾는가?

 

이런 메마른 삶을 벗어나기 위해 찾게 되는 것이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철학일 테고, 활동으로서는 정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재 한국적 자본주의-의회주의 사회에서 이 철학과 정치라는 것들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종종 우리를 배신하기도 한다. 어떤 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문제적 상황을 연출하곤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내가 혹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음료들처럼 순간순간의 기호나 취향이 되어 버린 철학은 그저 심리 치유에나 쓰이는 수준이고, 무기력하게 TV 뉴스 채널이나 쳐다보며 스포츠 중계 보듯이 해야 하는 정치와 투표라는 행위는 우리를 숙명적으로 무기력, 허무, 냉소주의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랭 바디우의 《투사를 위한 철학》(2013)은 명확하다. 철학의 죽음이 이야기되는 사회에서 자본주의-의회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한 철학자가 철학과 민주주의와 정치의 매듭을 설명하며 결국은 이 죽음과 슬픔의 밤을 견디고 새로운 현실적 삶의 새벽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는 철학하는 노동자, 정치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민주주의의 무력감은 장소의 독립에서

 

내가 알랭 바디우의 이야기에서 도드라지게 받아들이는 것은 장소·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오늘날 철학이나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무력감을 주는 것은 그것들이 온전히 장소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정치, 민주주의가 처음 출발할 때는 현실의 장소와 조건들이 필요하지만 정작 발생 이후에는 그 진행의 방향성이나 존립·지속의 조건들은 발생 장소로부터 독립한 위치들을 점유함으로써 가지게 된다는 것. 우리가 직면한 무력감 역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철학이 필요하거나 대두되는 것은 사유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현실적 삶의 조건들에 있지만 이후 정립되는 철학은 담론으로서 독립적인 위치를 스스로 가짐으로써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민주주의적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게 문제라고 본다.

 

민주주의 또한 다수 대중에게서 보편성이라는 지지를 기반으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그 보편성에 갇혀서 현실적 장소들을 마련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특히, 민주주의 자체가 대의제 의회주의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국적 상황은 결국 대의라는 이름의 출발점은 있어도 그 대의가 어디로 향하고 어디에서 그 힘들이 작동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는 대리하는 자들 이외에는 알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이는 우리가 모든 정치적 문제 해결을 극소수 명망가에게 기대는 것 이외에는 어찌해볼 방법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최근 한국 정치의 한계 상황은 우리에게 거듭 무력감과 절망감을 던져 주곤 한다.

 

결국 ‘진리’ 또는 ‘정의’라는 것을 보편타당하게 만들려는 것으로써 철학과 정치가 필요하다고는 해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철학과 정치를 수행할 수 있는 우리들만의 열려 있는 장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알랭 바디우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두운 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주소를 갖자

 

이런 의미에서 2013년 ‘난센여권’ 워크숍을 책으로 묶어 낸 최소연의 《난센여권》(2014)을 읽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자기 인식의 가능성들을 확인하도록 해 준다.

 

흔히 ‘난민’으로 규정됨으로써 가지게 되는 ‘장소 없음’의 슬픔은 지금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난민’이 단지 ‘장소 없음’이 아니라 돌아갈 곳은 있으나, 지금 현재적으로 머물 곳이 없을 뿐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면, 결국 나처럼 가고자 하는 지향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슬픔과 맞닿아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가졌어야 할 주체적 삶에서의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머물 수 있는 장소를 가지지 못한 것은 결국 내가 철학이나 정치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는 난민으로 규정되어질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난센여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결국 스스로를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기규정, 자신이 머물 곳이 없다는 ‘장소 없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으로서의 자기 인식이 가능해야만 이러한 힘든 삶 속에서도 견디어 내면서 어떻게든 거처로써의 장소를 만들려는 연대의 힘들이 작동할 관계망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각자의 ‘장소 없음’을 벗어나 스스로의 거처, 주소를 가지는 것, 이것이 오늘날 철학과 정치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 조건들이라는 점을 나는 《투사를 위한 철학》과 《난센여권》 두 권의 책을 통해 곱씹어 보게 된다.

 

↘ 박영길 님은 밤에는 사회적기업 ‘삶과 환경’에서 수거원으로 청주시 음식물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고 낮에는 청주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공룡은 반자본주의, 일상성, 공동체라는 가치를 마을이나 지역에서 교육과 사회적 작업을 통해 실험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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