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호 2014년 7월호 살림,살림

[ 이야기가 있는 밥상 강화도의 입 작은 병어, 속 좁은 밴댕이 ]

한번 먹어 보시겨, 맛이 제대로이다

글 함민복

강화도에 밴댕이와 병어가 제철이다. 어부들은 하나같이 밴댕이와 병어가 예전처럼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강화도 웬만한 곶을 가면 저렴한 값으로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을 만큼은 잡혀 다행이란다. 이맘때쯤이면, 회 중에 병어와 밴댕이를 제일 좋아 하는 나는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설렌다.

 

 

뼈째 썬 병어(왼쪽)와 된장 찍은 풋고추, 기름에 살짝 무친 함초나물로 깻잎쌈을 싸 먹으면 그만이다. 강화도에서는 밴댕이회(오른쪽)를 낼 때 펼치지 않고 반으로 접어서 낸다. 반들반들 은빛 윤기가 도드라져 입맛을 다시게 한다.

 




덕자는 조림으로, 덕대는 날것으로


강화도 본 섬에서 볼음도까지는 뱃길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 오늘은 볼음도에서 잡아 나온 밴댕이·병어 잔치가 동네의 열린 사랑방 ‘이웃사촌’에서 있는 날이다. 서둘러 강화읍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가며 볼음도에서 병어와 밴댕이가 잘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저녁 잔치를 위해 음식 준비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주방에 들어가 닦달하고 있는 병어를 살펴본다. 등과 배에 은백색의 작은 비늘들이 잘 붙어 있어 눈으로만 봐도 그 신선함이 전해진다. 병어는 볼수록 마름모꼴의 납작한 몸체가 신기하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이런 병어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큰 놈은 두 자 정도이다. 머리가 작고 목덜미가 움츠러들고 꼬리가 짧으며 등이 튀어나오고 배도 튀어나와 그 모양이 사방으로 뾰족하여 길이와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입이 매우 작고 창백하며 단 맛이 난다. 뼈가 연하여 회나 구이 및 국에도 좋다. 흑산도에서도 난다.”
늦은 점심인지, 미리 맛보기로 만들어 본 요리인지, 사람들이 둘러앉는다. 햇감자를 넣고 조린 병어가 달다. 감자에 밴 병어 맛이, 병어에 밴 감자 맛이 일품이다. 각자의 맛만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 맛을 나눠 보탤 때, 맛은 배가 되고 깊어지나 보다.
병어를 잡아온 어부 박정훈 씨로부터 병어와 덕자와 덕대의 차이를 듣는다. 덕자는 큰 병어(길이가 30㎝ 이상 되는 병어)를 이르고 덕대는 어종이 다르다고 한다. 덕자는 몸집이 커 뼈가 억세고 맛이 덜해 회로 먹는 것보다 조림용이 제격이란다. 덕대는 어획량이 적고 귀해 값이 비싸다고 일러준다. 섬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야 한다며 박정훈 씨는 자리를 떴고, 사람들은 입 작은 병어를 먹으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을 크게 벌리고 자주 웃는다. 저녁 모임에 참가할 인원을 헤아려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사냥감을 포획해온 원시 부족들의 달뜬 표정이 읽힌다. 저녁 일곱시에 이곳에서, 음식에 잠재해 있던 원시성이 살아나리라.
나는 그때까지 병어회를 기다릴 수 없어, 전에 내가 살던 바닷가 마을 동막리로 전화를 건다. 오늘 낮물에 병어와 밴댕이를 잡아왔다는 고 선장 말을 듣고, 감자와 병어가이웃사촌처럼 어우러져 맛을 내고 있는 병어찜을 뒤로 하고 차에 오른다.

 




 

 

 

 

 

 

 

 

 

 

 

밴댕이 손질

 

 

 

 

 

 

 

 

 

 

 

 

 

 

 

병어 손질

 

 

 

달걀 같은 물알과 바다의 거울 조각 병어


“이거 한번 먹어 보시겨. 맛이 제대로이다!”
회를 먹고 있는 동네 청년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숭어 내장을 굵은 소금에 찍어 입에 털어 넣었다.
“비릿한 게 맛이 괜찮은데….”
바다가 없는, 충북이 고향인 나를 숭어 내장의 비린내로 골려주려던 동네 청년들의 실망스러워하던 눈빛.
8년 전 강화로 이사를 오고 겪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객지를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와 바다 일을 막 시작한 고선장을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나는 고 선장 배를 타고 10여 년간 바다 일을 따라다녔다. 봄이면 바다에 나가 말뚝을 박고 1km나 족히 되는 숭어 그물을 맸다. 삼십여 분 배를 타고 나가 물이 나길 기다려, 그물에 걸린 숭어를 잡아 와 트럭에 싣고 팔러 다니는 데를 쫓아다녔다. 그물을 매고 두 달이 지나면 그물에 물때가 껴 숭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때쯤 말랑말랑한 달걀 같은 물알(민챙이 알)이 그물에 걸리고 바다의 거울 조각병어가 들기 시작한다.
여느 때 같으면, 물이 적게 나가 그물이 드러나지 않아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는 조금 때였다. 고 선장이 우럭 낚시를 가자고 했다. 그물 터에 들러 배 위에서, 그물에 붙어있는 물고기가 모이게 만들어 놓은 굴뚝만 끌어올려 병어 몇 마리를 털어 실었다. 우럭 조황은 좋지 않았으나, 고 선장이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얼음에 살짝 재워두었다가 꺼내 썰어주던 병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 선장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으나, 숭어 그물 매주느라 수고했다는 답례로 나선 뱃놀이임을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병어철이 지나고 한 달쯤 지나면 손톱만한 병어들이 빤짝이며 그물에 가득 걸렸다. 예쁘고 가엾은 새끼 병어들과 은행잎(은행잎만한 크기의 병어를 이름)들을 퍼 담아, 벌을 한참 걸어 나가서 물이 있는 곳에 살려주던 기억도 아련하게 빛난다.

 



 

 

 

 

 

 

 

 

밴댕이회를 뜰 땐 특별한 솜씨가 필요하다. 몸집이 작은 밴댕이의 등지느러미 부분을 어떻게 살짝 남겨서 회를 뜨는지에 따라 씹는 맛이 다르다, 고 선장이 솜씨를 발휘하는 모습(오른쪽)을 함민복 시인(왼쪽)이 지켜보았다.

 

 

땅과 바다의 기운이 담긴 함초나물


고 선장은 밴댕이와 병어회를 뜨고 부인은 곁들이를 내온다. 그의 집 앞 나무식탁에 회가 차려진다. 밑반찬이 도시의 횟집처럼 풍성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조촐한 식탁에는 정성도 함께 올라와 부족함이 없다.
강화에서 자란 것에서만, 배추 밑동 맛 같은 매콤한 맛이 난다는 보라색 석박지가 있다. 겨울철이 아니라 밴댕이석박지가 아닌 것이 섭섭하긴 하다. 강화도에서는 밴댕이와 병어를 제철에 잡아 소금에 절여둔다. 그랬다가 김장철에 하루 정도 물에 우려낸 밴댕이나 병어를 나박나박 썬 순무에 버무려 밴댕이순무석박지를 담근다. 석박지가 익은 한겨울 밴댕이나 병어만을 골라 한 접시 꺼내놓고 술안주로 삼을 때면 다른 일체의 음식이 고개를 떨군다. 밴댕이순무 석박지는 가장 강화도다운 음식이라, 나는 귀한 손님이 올 때는 널리 수소문해서라도 구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식탁엔 건강에 좋다는 함초(뚱뚱마디)나물도 올라있다. 함초나물은 간을 안 해도 자체로 짭조름하다. 약초연구가 최진규 씨의 말에 의하면 함초는 땅의 기운과 바다의 기운 경계인 뻘에서 나기 때문에 약효가 탁월하다고 한다. 녹용이 좋은 약초인 것도 몸은 여성적이고 뿔은 남성적인 사슴이 음과 양의 경계에 서 있는 동물이라 그렇다고 한다. 경계를 허물고 땅과 물이 이웃으로 어우러져 사는 뻘의 힘이 함초에 담겨 있나 보다.
깻잎에 함초를 올려놓고 된장 찍은 마늘과 병어회를 올려놓는다. 입 작은 병어는 단백하며 달고, 속 좁은 병어는 부드러우며 고소하다.
나는 십여 년 간 같은 배를 타고 다녔으면서도, 서로 간에 사소한 오해로 거지반 일 년을 소원하게 지냈던 고 선장과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예전에 썼던 짧은 시 한 편을 떠올려 본다.


밴댕이


팥알만 한 속으로도
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


자, 인사드려야지


이 분이
우리 선생님이셔!

 

 



 

병어회와 밴댕이회를 앞에 두고 마주앉아 고 선장과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를 타는 고 선장을 따라 나가면 그는 막 잡은 병어를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얼음에 살짝 재웠다가 꺼내 썰어주었다.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함민복 님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하는 시인입니다.
시인에게 강화도는 지천명에 배필을 만나 뿌리를 내린 제2의 고향입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017